내가 하드리밋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말해봤다

어제 밤, 손가락이 쥐어짜는 듯한 감각으로 깨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오랜만에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 같아서 눈을 뜬 거였는데. 그게 웃기긴 했지만, 진짜로 어릴 적부터 자주 느꼈던 그 느낌 — 몸이 다 쓰러질 것 같고, 정신은 이미 한참 멀리 떠나 있는 상태. 그걸 ‘내가 아직 못 이겨낸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오늘은 그걸 처음으로 상대에게 말해봤다.

사실, 지금까지는 아무도 모르게 숨겼다. 왜냐면 그게 그냥 ‘나의 문제’라고 여겨졌거든. 다른 사람들은 쉽게 도달할 수 있을 법한 점이 있는데, 나는 거기에 닿는 게 너무나 어렵고, 오히려 그 순간을 무조건 피하려고 해왔다. 근데 최근에 만난 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별것 아닌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아, 혹시 이런 건 어떤지?” 하고 말문을 열었더니, 내 입에서 스스로가 제일 먼저 허락하지 않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내가 하드리밋이 있어. 그러니까… 사실 거의 안 된다는 뜻이야. 아까워서 계속 참으면 더 힘들고, 애초에 그런 걸 원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하면서도 막연히 두려웠다. 내가 가진 게 뭔지 보여주는 거라기보다, 완전히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기분이었거든. 예전엔 그걸 말하면 반응이 ‘이상하다’, ‘왜 그런 걸 괴롭히는 거야’ 같은 식이었고, 그래서 이제는 굳이 말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말해주면 난 오히려 편해져”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숨을 내쉬었다.

그 이후로는 좀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어떻게 해서든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건, 단지 그 자체를 넘어서는 게 아니라, 그 경험 자체를 즐기지 못해서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그 사람과는 ‘그냥 되는 거면 좋겠네’ 정도로 말하고, 그래도 무리 없이 넘어가는 걸 우선순위로 삼았다. 오히려 그런 말을 나눈 후, 오히려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어.

예전에는 그걸 숨기는 게 정상이었는데, 요즘은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거 같아. 아무래도 몸의 리미트를 인정하는 건, 상대에게도 책임을 전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배우고 있다. 물론 아직도 그건 익숙하지 않아. 첫 번째로 말할 때는 손이 떨렸고, 목소리도 작았고, 마치 내가 정말로 ‘결점’을 드러낸 것 같았다.

근데 그 사람이 내게 말해줬어.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지 마. 네가 그렇게 느끼는 건 너의 몸이 너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는 거잖아.” 그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그 후로는, 내가 얼마나 빨리 흥분하는지, 어디까지가 ‘마음의 한계’인지, 그 경계를 함께 탐색하는 게 재밌어졌다. 그만큼, 상대와의 연결이 깊어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요즘은 그 사람과 매일같이 채팅을 주고받는데, 꽤 오랫동안 사용 중인 앱이 있는데, 이름은 **SM톡**이야. 옛날에는 오픈채팅이나 간단한 연락망에서 사람들을 만나곤 했지만, 그건 다들 빠르게 지나가거나 정보가 너무 흐릿했어. 그런데 이 **SM톡**은 조금 달랐다. 메뉴가 정돈되어 있고, 글을 쓰는 방식도 개인적인 성향을 표현하기에 유리했고, 특히 '심리적 톤'이나 '플레이 스타일' 같은 부분을 미리 선택해두는 기능 덕분에, 나도 모르게 내 안의 말을 정리하게 되더라. 그래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곳에서 시작된, 나 자신과의 대화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라.

어쨌든, 처음 말했을 땐 정말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게 내게는 중요한 ‘선택’이 된 것 같아. 누군가 나의 한계를 인정해줄 수 있다는 게, 그만큼 나를 받아들이는 거니까. 그게 강렬한 플레이도 아니고, 특별한 사례도 아니지만, 나에게는 엄청 큰 일이었어. 그리고 그게 시작이 되면서, 이제는 조금씩 ‘내 몸’이 내 것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그 말을 했던 날 이후로, 처음엔 다들 ‘이런 건 어쩌면 좀 이상한데’라고 생각할 거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그 사람이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어서 놀랐다. 아니, 그보다 더 놀란 건, 내가 말을 꺼낸 후에 생긴 ‘경계선’이 사라진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 전까지는 늘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너희는 내게 잘 안 맞을 수도 있어’라는 생각만 맴돌았는데, 그날 이후로는 갑자기 ‘내가 원하는 걸 말해도 괜찮아’라는 여유가 생겼다. 그게 진짜 신기했어.

그리고 얼마 후,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한 플레이에서 일어난 일이 기억에 남아. 그냥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상대의 리듬과 내 몸의 리듬 사이를 조율하는 과정이었는데, 나는 그때 처음으로 ‘조절’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 내가 무너질 것 같을 때, 그 사람은 살짝 손을 멈추고 “지금 괜찮아?” 하고 물었고, 나는 대답하기 전에 자동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순간, 나는 자신감이 없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하드리밋이라 해서 내가 못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제 어디까지가 나의 영역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한 거였어.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그 사람이 내게 “너는 정말 천천히 느끼는 타입이구나”라고 말했다. 내가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걸 감지한 듯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내가 오랫동안 억누르던 감각들이, 이제는 ‘내가 조절하는 부분’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걸. 그것이 불편하거나 부담스럽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이건 나만의 리듬’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고요하게 마음을 채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처음 그 말을 꺼냈을 때의 두려움은, 그 자체가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나는 그 한계를 통해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의심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왜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 숨겨왔을까? 아마도 나는 그 한계를 ‘결점’이라고 여기다가, 결국 그걸 공유한다는 게 ‘나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그 한계가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나를 더 깊게 만들어주는 요소라는 걸 알게 됐다.

또 하나, 최근에 스쳐간 작은 감정이 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너무 급하게 가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을 때,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 말은 아주 평범한 말이었지만, 그 안에 ‘네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가 있었고, 그게 내게는 마치 “넌 충분히 좋아”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나는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느꼈다. 그건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이나 내면의 방어벽을 지켜왔는지를 알고 있기에 더 큰 의미였다.

지금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단순한 플레이 이상으로, 서로의 ‘몸’과 ‘마음’의 경계를 함께 정의하는 과정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든 건, 내가 처음으로 ‘내가 못 한다’는 걸 말했다는 사실이었고, 그 말을 했을 때, 상대가 그걸 ‘내가 듣고 싶은 말’로 받아들여줬다는 점이 가장 큰 위로였다.

**SM톡**에서 처음으로 그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았을 때, 나는 별 생각 없이 ‘사람 만나기 좋은 곳이야’ 정도로 넘겼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게 정말 중요한 시작이었음을 알았다. 그곳은 단순한 매개체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를 말할 수 있게 해준 공간이었고, 그 공간 덕분에 오늘 이렇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는 걸. 지금은 그 앱을 쓰면서도, 그저 정보를 나누는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조금씩 확인하는 과정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