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허락해야 한다는 게 뭔지 몰랐던 그 순간

어떤 날은 그냥 내 마음이 거칠어져서, 평소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을 선택하고 싶어졌어. 그게 바로 ‘제압’받는 것.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힘을 빼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 나는 보통 돔 쪽인데, 다들 그런 줄 알았지. 왜냐하면 내가 워낙 강한 성향이라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너 진짜 괜찮아?”라고 물을 정도였거든. 대화 중에 자기가 하기 싫은 걸 강요하지 않겠다는 말을 할 때마다, 오히려 나한테 “그럼 너는 괜찮아?”라는 반응을 보여주는 건 익숙했어.

근데 한 번쯤은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내게 어떤 행동을 해줘야 할 때가 있었어. 막상 그렇게 되면 생각보다 불안하더라고. ‘내가 이거 너무 못 견디겠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잖아. 그런데 그걸 스스로 인식하게 된 건, 어느날 파트너와의 이야기에서 시작됐어. 그 친구는 평소엔 조용하고 예민한 타입이었는데, 마침내 “혹시 내가 네게 조금 무섭게 다가가도 될까?”라며 물었어. 그 말을 듣고 난 바로 머릿속이 하얘졌어. 왜냐하면 그게 나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경로였거든. 나는 늘 내가 컨트롤하는 쪽이었고, 그게 안정감이었어.

처음엔 그저 “괜찮아, 해봐”라고 넘겼지만, 다음 회의에서는 그 친구가 실제로 내게 약간의 통제를 시도했어. 문을 닫고, 조명을 어둡게 하고, 손목을 잡아서 자리에 앉히는 방식. 그게 처음엔 너무 생소해서, 몸이 저항했어. 손끝이 떨렸고, 가슴이 조여졌고, “내가 여기서 허락해야 한다는 게 뭔지 모르겠어”라는 감정이 밀려왔어. 그런데 그때 친구가 내 목에 손을 얹으며 조용히 말했어. “괜찮아, 넌 허락할 수 있어. 네가 알아서 판단해도 돼.” 그 말 하나만으로도, 기분이 달라졌어.

그 이후로 우리는 비슷한 느낌을 여러 번 반복했어. 단순한 플레이가 아니라, 서로의 위치를 바꾸는 시간이었어. 내가 힘을 빼는 것, 그리고 그 힘을 빼는 동안에도 조건부로 존중받는다는 느낌. 그게 뭔지 몰랐던 게 사실이야. 내가 계속 힘을 써서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고 했을 때는, 그게 내 책임인 줄 알았지.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받는’ 입장이 되면서, 정말로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걸 느꼈어. 선택이란 게 단지 ‘거절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허락하는 권리’라는 걸 깨달았어.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그 친구가 내 입술을 살짝 핥으며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걸 어떻게 해줄지, 내게 맡기는 거야”라고 말했던 순간이야. 그 말을 듣고 난 숨이 멎었어. 왜냐하면 그건 내가 오랫동안 원했던 것—나를 진짜로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표현이었거든. 근데 그 사람이 바로 내가 보호하고 싶었던 사람인 걸 알았을 때, 그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였어. 그 친구가 나를 점점 더 자신 있게 다루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더 믿을 수 있게 됐어. 내 기대치를 뛰어넘는 방식으로, 그 친구는 나를 끌어안고, 동시에 자유롭게 두었어.

그런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오픈채팅’이나 ‘다른 플레이 모임’보다 나은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내가 평소엔 너무 당당하게 보였지만, 사실은 그만큼 외로움이 많았던 거야. 누구도 내 마음속의 틈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그 틈을 메워주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었어. 그런데 스위치를 돌리면서, 내가 ‘누군가의 눈’을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배웠어.

그리고 요즘은 이런 식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새로운 도구를 써보고 있어. 정확히는 ‘SM톡’이라는 채팅 앱인데, 처음엔 그냥 정보 공유용으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잘 맞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오픈채팅처럼 대충 지나가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성향이나 기대를 좀 더 구체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어. 특히 ‘스위치 가능한 사람’을 찾는 분류가 따로 있어서, 나는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어. “오, 이건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했고, 결국 그곳에서 그 친구를 만났어. 그 친구가 “넌 뭔가 힘을 쓰는 게 아니라, 힘을 주는 거야”라며 말했던 것도, 그 앱 덕분이었을지도 몰라.

지금은 여전히 돔 쪽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그 반대로도 가지만, 이제는 ‘역할’이 단순한 틀이 아니라, 나와 파트너 사이의 대화라는 걸 알게 됐어. 내가 힘을 쓰는 순간, 그 힘이 어디서 오는지, 또 그 힘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더 신경 쓰게 됐고, 반대로 내가 힘을 빼는 순간, 그 힘을 빼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알게 됐어.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걸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고, 그게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었을지도 몰라. 그런데 스위치를 돌리면서, 나는 ‘내가 받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웠어. 그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