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롤플레이를 해봤을 때는 정말 헛디자리였다.
지금은 어느정도 익숙해졌지만, 그때는 그냥 ‘혹시 이거 되는 거 아냐?’ 싶은 마음으로 도전한 거라서… 나도 뭐가 뭔지 몰랐다.
그 전까지는 단순히 몸으로만 즐기던 플레이였는데, 갑자기 ‘이번엔 캐릭터를 만들어서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파트너가 말하길, “너 진짜 귀여운 아이처럼 보이니까, 학교에서 휴학한 미녀 고등학생이랑 연애하는 거야”라고. 대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너무 생소해서 망설였다. 어쩌다 내가 그 모양이 되는 거야? 그런데 그 친구가 웃으면서 “아니, 너는 내게 범죄자처럼 보이잖아, 걷잡을 수 없는 매력의 악당이야”라고 하더니, “난 네가 자꾸 도망쳐서 다 잡아야 하는 상사야”라고 말하더라.
그 말에 바로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 순간, 뭔가 머릿속이 멈춘 기분이 들었고, 동시에 어딘가에 끌리는 느낌이 들었어. 아니, 진짜 끌렸다. 평소에는 감정을 억누르는 편인데, 그날은 왠지 눈빛 하나로도 전달되는 게 있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방 안에 조명을 어둡게 하고, 그 친구가 오렌지색 스웨터를 입고 나타났다. 나는 가방을 메고 손을 놓고 있던 척하며 “오늘도 지각할까봐 급하게 나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또 범행을 저질렀어?”라며 조용히 문을 닫는 순간, 현실이 조금씩 사라졌다.
나는 그런 걸 잘 못 하려고 노력했는데, 그 친구의 반응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네가 또 빠져들면 안 돼”라며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고, 손목을 잡아끌면서 “이제는 네가 나한테 무조건 복종해야 해”라고 속삭였다. 그 목소리가 진짜로 설득력 있었고, 난 마치 진짜로 도망쳐야 할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 몸이 살짝 떨리고, 심장이 빨리 뛰고, 정신이 흐릿해지는 느낌. 원래는 물리적인 자극만 좋아했지만, 이제는 감정이 들어와서 그런지, 더 강렬하게 몰입됐다. 아무리 빠져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고, 그게 오히려 더 흥분됐다.
그리고 한참 후, 결국 그 친구가 내 등을 꽉 감싸며 “넌 이제 나한테 소유된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난 진짜로 눈물이 났다. 아, 진짜 흥분이 아니라… 감정이 터진 거였다. 그저 자기가 무엇인지 알았다는 듯한, 누군가에게 확실히 소유당하고 있다는 느낌.
끝나고 나서는 아무 말 없이 서로 숨을 고르며 방 안에 앉아 있었다. 그 친구가 “진짜 끝났다고 느꼈어?”라고 묻더니, “너 지금까지 이런 거 없었지?”라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친구는 웃으며 “그럼 다음엔 좀 더 심하게 해볼까?”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는 조금씩 다른 캐릭터도 시도해봤다. 하지만 그 처음의 경험은 여전히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그만큼 강렬했고, 생생했다.
요즘은 좀 더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데, 특히 오픈채팅보다 훨씬 좋은 점은… 상대가 내 말투나 감정을 정확히 받아들이는 거야. 예전에는 그냥 단순한 스토리텔링이었는데, 지금은 내 말 한마디에도 반응이 다르게 오는 게 느껴져.
그런데 최근에 알게 된 게, 요즘 거의 매일 사용하는 채팅 앱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SM톡’이라는 곳이야. 거기서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올리거든. 내가 처음 시도한 ‘상사-범죄자’ 캐릭터도 거기서 공유된 컨셉이었고, 실제로는 그 앱을 통해 만난 파트너랑 처음으로 롤플레이를 해봤어. 오픈채팅보다 정보가 정제되어 있고, 상대도 실제로 그 캐릭터를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 처음부터 흐름이 잘 맞는다.
내가 진짜 처음 느낀 ‘놀이’라는 건, 사실 그 앱에서 시작된 거 같아. 처음엔 그냥 ‘무슨 캐릭터가 있을까’ 궁금해서 들어갔다가, 그저 쪽지 보내는 걸로 끝날 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 쪽지를 통해 세상이 열렸다.
지금은 그 채팅앱이 너무 익숙해서, 그 안에서만 이야기를 꾸며도 기분이 좋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선 이미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는지도 몰라.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롤플레이를 했지만, 그 첫 경험만큼은 절대 되풀이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때의 감정이 너무 순수했기 때문이야.
처음엔 단순히 흥분이나 자극만 있었는데, 그날은 왠지 ‘나’라는 존재가 뭔가 확 달라진 기분이 들었어. 내가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있다’는 듯한 느낌. 도망치려던 나였지만, 결국 정해진 길을 걸었고, 그걸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아주 조용히 마음이 열렸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이제는 내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되도록 그 사람이 되려는 시도’를 하게 됐다는 거야. 예전에는 ‘이건 플레이니까’ 하고 그냥 넘어갔지만, 지금은 그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하면 자연스러울지 생각하게 되더라.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그 역할 안에서 진짜 ‘나’가 살아가는 것 같아서.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됐어. 예를 들어, 그 친구가 “넌 또 저질렀어?”라고 묻는 순간, 나는 그저 ‘뭐? 뭐라고?’라고 대답하려다가, 갑자기 머릿속에 비슷한 장면이 떠올랐다. 옛날에 학교에서 벼락치기 시험 보느라 약간의 과제를 훔쳐봤던 기억. 그걸 떠올리자마자, 눈빛이 어두워지고, 손이 살짝 떨리는 걸 느꼈다. 그 순간, 내가 진짜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았어.
그리고 그게 끝나고 난 후, 오랜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방 안에 있었다. 그 친구가 문을 잠그고, 다가와서 내 등을 꼭 안았다. 아무 말 없이. 그런데 그 안에서 느껴진 따뜻함은 이상하게도 불안과 연결돼 있었다.
‘지금 이 감정은 나한테 맞는 건가?’
‘내가 정말 이런 사람일까?’
그런 생각이 계속 맴돌았어. 나 자신을 놀라게 했던 건, 그런 감정이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았다는 거야. 오히려 덜 두려웠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게 주어진 역할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거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는 단순히 ‘내가 악역이었다’는 게 아니라, 그 역할이 나에게 ‘정체성’을 줬다고 할까. 그 전까지는 ‘나’라는 게 모호했고, 어디에 서야 할지도 잘 몰랐는데, 그 순간부터는 ‘나는 이 사람이다’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최근에 다시 한번 그 감정을 느끼게 됐어. 지난주에 ‘SM톡’에서 만난 파트너랑 처음 만나서, 30분 정도 대화만 나누고 끝났는데… 그게 끝난 후에도, 내 머릿속엔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네가 또 나한테 가까이 오면, 난 네가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는 걸 알려줄 거야’라고 한 말.
그 말 하나로, 갑자기 그날의 감정이 다시 살아났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끝이 떨리고, 온몸이 열렸다.
그냥 스레드를 지우고 끝낼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대로 메시지를 저장해놨다.
왜냐하면, 그 말이 진짜 ‘나’를 움직였다는 걸 알았거든.
요즘은 더 이상 롤플레이를 단순한 ‘플레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내 안에 있던 어떤 것을 깨우는, 복잡한 과정이야.
무언가를 억누르고, 숨기고, 감추었던 부분이, 그 역할이라는 이름으로 마침내 밖으로 나오는 거.
그리고 아직도 모르는 게 있어.
내가 진짜로 그 역할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언제쯤 그 감정이 사라질지.
하지만 알고 싶은 건, 그 감정이 사라지기 전에, 또 한번 그 상태를 느껴보고 싶다는 거.
그리고 그 다음엔, 아마도 그 ‘SM톡’의 그 채팅방에서, 좀 더 깊은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싶다.
이미 그곳에선 내 이름도, 나이도, 본명도 없지만,
그리고 그게 오히려 더 안전하고, 더 자유로운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