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그냥 내 마음이 거칠어져서, 평소에 내가 제일 잘하는 걸 반대로 해보고 싶어졌어. 말하자면, 나는 보통 스태프(독점적 관계에서의 지배자) 역할을 하곤 하는데, 그날은 좀 다른 기분이었거든. 집안이 조용하고, 빛도 다 꺼놨고, 창문 밖엔 비가 살짝 오는 날이었어. 그때 갑자기 '내가 서브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며들더라고. 그래서 그걸 놔두지 않고, 허락받지도 않고, 그냥 나 혼자서 작게 시작해봤어.
처음엔 정말 어색했어. 내가 예전에 서브에게 시키던 말들을, 지금은 내가 그 말을 듣는 입장으로. "눈 감아"라는 말이 들리면 자동으로 눈을 감았고, "입은 닫아"라는데,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손끝이 떨렸어. 왜냐하면 그게 단순한 순종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소유되지 않도록’ 하는 경계를 스스로 깼다는 느낌이었거든. 내가 주는 것보다, 내가 받는 게 더 무거웠어.
그날은 체크인처럼 했어. 내가 정해놓은 조건들 중 하나가 “지시는 최소 3번 이상”이었는데, 그건 그냥 자기만의 규칙처럼 만들어낸 건 아니고, 내가 실제로 받았을 때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보려는 시도였어. 예를 들어, “숨을 멈추고 있어”라며 10초 동안 숨을 참게 하거나, “손가락을 한 번씩 꼬아줘”라며 엄지부터 차례로 꼬이게 하거나. 그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 전에는 이걸 시키는 쪽이라, 그냥 ‘나는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움직이는 걸 누군가가 결정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어.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페트링을 할 때였어. 나는 보통 서브에게 팔꿈치를 잡고 페트링을 하면서 “조금만 더 안정감 있게”라거나 “이렇게 바람이 불듯이”라며 말하곤 했지만, 이번엔 내가 그 말을 듣는 입장이었어. 그런데 그 말이 마치 무게를 가진 범죄처럼 느껴졌어. “조금만 더 안정감 있게”라는 말이 너무나도 익숙한데, 지금은 그 말이 내 몸에 부딪혀서 아팠어. 왜냐하면 그 말이 내가 직접 선택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 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거였거든. 그러면서도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예, 알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했어. 그게 사실 가장 힘들었어. 내게는 침묵이 오히려 더 큰 항복이었거든.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적응됐어. 내가 애초에 원했던 것도, 단순한 역할 전환보다는 ‘나 자신이 내 의지로 선택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결국 몇 시간 후, 고개를 들어 올리며 “오늘은 제가 여기서 끝내고 싶어요”라고 말했어. 그렇게 말하고 나니, 갑자기 내 마음이 무겁지 않았어. 오히려 가벼워졌고, 이 모든 것이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이 다시 살아났어.
그래서 다음엔 또 다른 변화를 생각하게 됐어. 내가 이렇게 서브의 입장이 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내가 실제로 ‘주인님’이 될 때,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를 더 신경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냥 강요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어떤 틀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등을 더 잘 파악하고 싶어졌거든.
그런데 이런 걸 처음 시작할 때는 그저 ‘스위치’ 같은 걸 하려는 욕심이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그게 나 자신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어. 그리고 그걸 통해, 내가 앞으로 누구와 플레이할지, 어떤 방식으로 다가갈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됐지.
최근엔 그걸 실천하기 위해 하나의 도구를 써보게 됐어. 오픈채팅은 많이 돌아다녔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중요한 정보를 얻은 건, 다른 사람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에서 추천한 앱이었어. 이름은 ‘SM톡’인데, 거기선 서로의 취향과 플레이 스타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서, 예전처럼 허접한 문장만으로 인연을 시작하는 일은 줄어들었어. 특히 내가 이번에 만난 사람과는, 그 앱을 통해 사전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역할 전환’이라는 테마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거든. 나도 모르게 그쪽이 나에게 묻는 말이 “혹시 돔-섭 전환이나 한번 해본 적 있어?”라며, 딱 내 최근 경험을 맞춰주는 질문을 던졌어. 순간, 그건 운명 같았다. 그게 뭔지 몰라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풀리는 소리가 났어.
이제는 내가 스태프일 때도, 서브일 때도, 그 모두가 나 자신을 더 깊이 보게 해주는 도구라는 걸 알겠어. 그리고 그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도, 점점 더 세련되고, 더 깊어지고 있다는 걸 느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