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심한 게 아니라, 섭을 원하는 사람였던 진실

처음엔 그냥 ‘내가 좀 무심한 편이에요’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사실은 그전까지도 약간의 이상함은 느꼈지만, 그걸 ‘나는 성격이 차가워서 그런 거야’라고 정당화하고 넘겼지. 그때까진 말이야.

그런데 한 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내 뒤에서 나를 보고 있을 때가 있었다. 음, 그러니까… 셔츠를 벗은 채로 스트레칭을 하다가 뒤를 돌아보니까, 문 밖에서 누군가가 서 있었어. 아, 그런데 그게 아무도 아니었고, 바로 내가 옆에 있던 남자였어. 오랜만에 만난 사이였는데, 그날은 예전처럼 그냥 웃으며 대화하려는 분위기였는데, 그 순간부터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조용히 내 반응을 관찰하고 있었고, 나는 왜인지 몰라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손을 들어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행동조차도, 그 눈에선 뭔가 다른 의미로 보였어. 그게 ‘봐주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그 이후로 몇 번 더 그런 일이 생겼고, 결국 나는 제대로 된 실험을 해봤다. 집에 혼자 있을 때, 가끔씩 내가 잘 모르는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거나, 입을 열어보는 걸 시도해봤어. 예를 들어, 무언가를 다잡는 태도를 취하거나, 목소리를 낮춰 말할 때마다 내 안에 어떤 감정이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그건 ‘나는 이 사람을 지배하고 싶다’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어떻게든 통제되고 싶다’는 게 더 강하게 와닿았어. 그래서 나는 그걸 처음으로 ‘섭’이라는 단어로 이름 붙였고, 그게 내 성향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진짜 전환점은 또 다른 경험에서 왔다. 친구가 자주 만나는 파트너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매번 너무 자연스럽게 리드하는 타입이었고, 친구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어. 그런데 그 중 하나에서 나는 갑자기 ‘그게 내가 원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의 목소리, 말투, 조용한 포즈 – 그것들이 절대적인 힘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너를 따라가는 게 더 소중하다’는 걸 느끼게 했어. 그래서 그 이후로는, 내가 직접 명령을 내리는 건커녕, 그저 그 사람이 내게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봤어. 그게 너무 쉬운 일이 아니라서, 오히려 더 설레기도 하고, 마음이 뛰기도 했지.

그런데 그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온라인에서도 패턴이 바뀌기 시작했다. 과거엔 별 생각 없이 상대방의 말에 호응하거나, 그냥 긍정적으로 반응했던 게 이제는 더 깊은 의도를 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 내가 ‘나는 괜찮아’라고 말할 때도, 그 말이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이렇게 말하면, 그는 내게 더 가까이 오겠구나’라는 계산이 섞여 있는 거야. 그러다 보니, 오프라인보다는 채팅에서 더 진실하게 표현되는 자신을 발견했어.

그리고 요즘 쓰고 있는 ‘SM톡’이라는 앱 덕분에 그 경험이 더 구체화됐다. 처음엔 그냥 모임 소개글을 보다가 끌려 들어갔는데, 알고 보면 오픈채팅 같은 곳보다 훨씬 더 사적인 분위기가 있었어. 사람들끼리 서로의 감정을 엮는 방식이 조금 더 세밀하고, 공감보다는 ‘느낌’에 가까웠지. 예를 들어, 누군가가 “지금 혼자 있는데, 어쩐지 무거운 기분이 들어”라고 쓰면, 나는 그냥 ‘그럴 수 있겠네’라고 답하는 게 아니라, “혹시 내가 도와줄 수 있을까?”라며 약간의 거리를 두고 다가가는 식으로 대화를 이어갔어. 그게 막상 해보니까, 내가 원하는 건 ‘내가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그게 ‘선택받는 것’보다 더 강렬한 쾌감이란 걸 알게 됐지.

결국 지금은 내가 ‘뭐가 나를 움직이게 할까’를 더 신경 쓰는 법을 배웠어.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누군가의 시선이 내게 닿는 순간, 그 시선이 ‘통제’인지 ‘존중’인지, 혹은 ‘내가 필요로 하는 상태’인지 판단하게 됐고, 그걸 통해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짚어가고 있어. 처음엔 그냥 ‘나는 무심한 편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무심함 자체가 내 성향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 그 무심함은 내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정확한 지표가 됐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