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손가락을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더 자유로웠다

어제 밤, 잠들기 전에 다시 한번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봤다. 그건 아주 평범해 보였던 약속이었는데, 실제로는 내가 가장 진지하게 고민했던 순간 중 하나였다.

처음엔 그냥 ‘아, 세이프워드라니… 어쩌다 써야 하겠어’ 싶었지만, 결국엔 제대로 써본 적이 있긴 했다. 그건 나도 예상 못 한 방식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은 꽤 오랜만에 만나는 파트너와의 만남이었고, 난 그 사람에게 다소 이상한 요청을 했던 거야.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건 지속적인 수동성과 절대적 의존이었고, 그걸 위해선 명확한 경계가 필요했단 얘기. 내가 제시한 건 ‘정말로 마음이 불편해졌을 때, 또는 도저히 버티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 나는 볼록한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릴 거야’. 그게 세이프워드였던 거지.

설명하자면, 이건 단순히 ‘멈춰’라는 말이 아니라, 내 신체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조절을 위한 신호였어. 막연한 ‘나 안 돼’ 같은 말보다 더 구체적이며, 또 상대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끔 정해진 행동이었지. 내가 손가락을 들면, 그 즉시 모든 것이 멈추고, 상대는 내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대로 조정해야 했다.

처음엔 정말 어색했어. 마치 어린 시절 학교에서 교사가 빨간불을 켜면 집합해야 한다는 게 생각났던 것처럼. 그런데 그게 오히려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어. 내가 아예 무조건적으로 몸을 내맡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실제로 그 만남에서 그 세이프워드를 써본 적은 없었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훨씬 더 자유로웠다. 아무리 강렬한 상태여도, 혹시라도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줄어들었거든. 그게 아니라면, 나는 언제나 ‘내가 너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움직였을 거야.

그런데 그 경험 덕분인지, 요즘엔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에서도 세이프워드를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됐어. 단지 ‘모르겠다’거나 ‘혹시 모르니까’라는 이유로 미리 논의하는 거지.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서로의 편의를 고려해서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기도 해. 예를 들어, 옆구리에 작은 반지를 끼고, 그걸 빼면 중단이라는 식으로도 바꿔봤고.

그리고 이걸 말하면서 떠올린 게, 최근에 써본 앱이야. 좀 특별한 플랫폼인데, 이름은 'SM톡'이란다. 처음엔 오픈채팅에서 발견했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 세이프워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보고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 특히 오픈채팅보다는 좀 더 개인적이고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더라고. 실시간으로 문의하거나, 조건을 함께 설정하는 게 쉽고, 익명성도 유지되면서도 정보 교환은 충분히 가능한 거 같아.

내가 좋아한 건, 세이프워드를 단순한 ‘비상버튼’이 아니라, 관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는 점이야. 그 앱에서 여러 사람이 ‘내가 어떤 신호를 주면 좋을까’라며 진지하게 공유하는 걸 보면, 이게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라는 게 느껴져.

이제는 세이프워드를 정할 때, 딱 ‘아, 이거 해야겠다’는 감정보다는 ‘이렇게 정하면, 더 잘 될 수 있지’라는 고민이 앞서는 거 같아. 물론 여전히 불안할 때도 있지만, 그 불안이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중’이라는 느낌이야.

세이프워드는 나를 묶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선이라고 느껴져.

그래서 지금도 자주 생각해. 혹시 내 다음 만남에서는,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리는 게 아니라, 차분하게 말로 “지금은 조금 무리니까, 잠깐 쉬자”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게 더 큰 용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세이프워드를 단순한 ‘약속’으로만 생각하지 않게 됐어.

처음엔 그냥 일종의 보호 장치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게 내가 더 깊이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반이라는 걸 알게 됐지.

그런데 사실 그 경험 이후 가장 크게 바뀐 건, 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야. 예전엔 너무 조급했어. ‘이거 싫어’, ‘너무 힘들어’ 같은 말은 막 떠올라서 바로 말했지만, 그것이 곧 흔들림이나 불안의 표출이었잖아. 그런데 이제는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정말로 필요한 게 뭔지’를 조금 더 오래 생각하게 되는 거야.

예를 들어, 지난번 만남에서 상대가 나를 손목을 잡고 천천히 눌러왔을 때, 갑자기 호흡이 빨라지고 심장이 두근거렸어. 그때 나는 ‘멈춰’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 전에 한 번 멈췄지.

내가 지금 느끼는 건 ‘억압된 공포’인지, 아니면 ‘조금 과도한 자극’인지를 분간해보려고. 그래서 ‘지금 이 상태를 좀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아니, 지금은 안 된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도 가능해졌어.

그리고 그 사이에, 나는 처음엔 무심코 외쳤던 ‘세이프워드’를 다시 생각해봤어. 어쩌면 그건 내가 스스로에게 ‘나는 괜찮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거든.

사실 그녀는 나에게 절대적인 통제권을 주고 싶어 했고, 나는 그런 걸 원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내가 ‘그걸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는 거야. 그게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멈출 권리’를 인정해야 했단 말이지.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세이프워드를 덜 쓰게 됐어. 대신, 그 신호가 내 안에 자리 잡은 것 같아.

그리고 요즘, ‘SM톡’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한 명은 이렇게 말했어. “세이프워드를 쓰는 게 아니라, 써야 하는 순간을 미리 준비하는 거야.”

그 말이 와닿았어. 내가 아까 언급했던 ‘손가락 하나’라는 신호도, 사실은 그냥 행동이 아니라, 내 마음이 준비된 상태를 나타내는 거였던 거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정말로 고민했던 건 ‘내가 언제까지 용기를 낼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내 감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였던 것 같아.

세이프워드를 정할 때,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단순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가 아니라, ‘나는 정말로 지금 이걸 원하고 있나?’라는 질문 자체를 견뎌내는 것이었어.

그리고 그 질문을 반복해서 해보는 동안, 나는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나’라는 존재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알게 됐지.

지금은 따뜻한 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는데,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어. 이따가 또 다른 약속이 있는데, 그때도 역시 세이프워드를 논의할 거야.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달라질 거야.

‘저기, 내가 그 신호를 쓰는 건, 내가 다 침묵하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게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결의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아마도 내가 이제는 세이프워드를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내 안에서 움직이는 이야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