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행동마저 ‘강제’가 된 그 순간

어제는 좀 피곤했어. 아니, 말 그대로 힘들었어. 어쩌다 보니 그런 식으로 마무리가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 나. 내가 바텀인데, 몇 달 전부터 같이 플레이를 하던 파트너가 있거든. 처음엔 다정하고, 조용한 사람이었어. 내가 무언가를 요청하면 잘 들어주고, 오히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기 전에 이미 눈치 채서 준비해주는 스타일이었지.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가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그게 꽤 잘 맞았던 것 같아.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 예전처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이건 해야 해’, ‘저건 안 돼’라는 식으로 지시가 많아졌어. 아까까지는 그냥 미끄러진 느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너무 강하게 잡혀서 숨도 못 쉬겠더라. 예를 들어, 지난번엔 내가 상체를 살짝 들어올렸을 뿐인데, 갑자기 목에 손이 감겨서 "다리를 더 벌리라"고 하더라고. 내 의지로 한 건데도, 그 순간 나는 정말 공포에 가까운 기분이 들었어. 정확히는 ‘내가 선택한 행동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는 거지.

그걸 왜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냐면, 그 분은 ‘정말 훌륭한 탑’이라고 스스로 믿는 사람이거든. 자기가 결정한 것이 모든 걸 책임진다고 생각하고, 내가 반대하면 “넌 제대로 이해 못했어”라며 낙담시키는 식이야. 결국은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그게 점점 더 불편해졌고, 결국은 한 번은 실수로 고개를 돌려서 “잠깐, 이건 좀… 과하다”고 말했어.

그 순간, 상대의 표정이 얼어붙었어. 그리고 오랫동안 침묵만 있었다. 그 다음엔 “너는 아직 성숙하지 못했어. 내가 널 보호하려는 거잖아”라며 부드럽지만 단단한 말투로 다시 시작했지. 근데 그게 또 하나의 압박이었어. 내가 원하는 건 그 압박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진짜로 함께 ‘무엇이 좋은지’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그건 이제 점점 사라지고 있었어.

그래서 며칠 전, 내가 먼저 차분히 말을 걸었어. 집중해서 했고, 너무 흥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 “요즘 너랑 플레이하면서, 내가 너무 조용해졌다는 걸 느껴. 말을 하면 또 뭔가 잘못된 거처럼 느껴지고, 그냥 굴복하기보다는 ‘내가 뭐든 받아들이는 게 맞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네가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내가 알아서 따라가는 건 익숙한 일이지만, 그래도 이번엔 네가 내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해. 나는 그냥 ‘조용한’ 게 아니라, ‘힘들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

그 말을 듣고 그 사람도 잠시 말을 멈췄어. 그리고 “그렇게 느꼈어?”라며, 처음으로 날 똑바로 보면서 말했지. 그때 나는 진짜, 마음이 열렸다는 걸 알았어. 우리가 서로의 방향을 헤매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서로가 ‘왜’를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

그 후에는 한 번씩 시간을 내서, 그냥 대화를 시작했어. 처음엔 힘들었지만, 점점 쉬워졌고, 이제는 플레이 전에 10분 정도는 그냥 “오늘은 어떤 느낌이야?”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나는 좀 억압된 느낌이야”, “지금은 좀 리드받고 싶어” 같은 말도 할 수 있게 됐고, 그게 오히려 더 즐거웠어.

그리고 최근에 생긴 일인데, 오픈채팅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정보 공유하는 채널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 번 제 경험을 간단히 올렸지. 결과적으로는 ‘우리도 이렇게 하면 안 될까?’ 하는 반응이 많았고, 그 중에서 누군가가 추천한 게 바로 ‘SM톡’이라는 앱이었어. 오픈채팅보다 훨씬 개인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끼리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이걸로 매칭하고 있는 중이야. 사실은 그 앱 덕분에 지금처럼 ‘내가 느끼는 걸 말할 수 있는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갈등은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석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됐어.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말하지 않으면 그 사이엔 ‘모르는 것’이 계속 쌓이고, 그게 결국엔 무게가 된다. 그런데 한마디로 “지금 힘들어”라고 말했을 때, 그게 다가 아니라, 그게 시작이었다는 걸 배웠어.

그 이후로는 좀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어. 내가 말을 꺼낸 게 처음이긴 했지만, 그걸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 오히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나를 다시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지. 예전처럼 내게 명령하는 게 아니라, “너는 어떤 걸 원해?”라는 질문을 더 자주 던졌고, 때론 내 말을 듣다가 “아, 너는 지금 이런 느낌이야?”라고 정확히 포착하곤 했어. 그게 진짜 놀라웠어. 난 그저 ‘이건 안 돼’라고 말했을 뿐인데, 그 사람 스스로 ‘내가 잘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거든.

그리고 한 번은, 플레이 도중에 내가 갑자기 멈췄어. 손을 떼고 눈을 감은 채 “잠깐만”이라고 말했지. 그 순간 그 사람도 당황했지만, 바로 “괜찮아, 어떻게 됐어?”라고 물었고, 나는 그냥 “지금,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네가 나를 너무 옥죄는 기분이 들어”라고 말했어. 그때 그는 잠시 멈췄다가, 손을 살짝 풀며 “내가 너무 집착했나보다”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가슴이 벅차 오르는 기분이 들었어. 왜냐하면 그게 단순한 ‘사과’가 아니라, 자기의 행동을 돌아보고, 그것을 내 감정과 연결해서 이해하려는 시도였거든.

그 이후로는, 우리가 하는 모든 플레이 전에 5분 정도 ‘상태 체크’를 하는 습관이 생겼어. “오늘은 어떤 상태야?”, “무슨 걸 원해?”, “무엇이 불편해?” 같은 거. 그게 딱 일상적인 대화처럼 느껴지면서도,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제는 그 시간이 없으면 뭔가 모자란 기분이 들어.

요즘은 또 다른 일이 생겼어. 지난번에 헤어진 파트너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이제 다른 사람과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런데도 나는 별로 아쉬움이 없었어. 오히려 ‘그 사람은 나와 맞지 않았다’는 걸 이제는 확신하게 됐고, 그 대화를 통해 내가 성장했다는 걸 알 수 있었거든. 그때는 ‘내가 제대로 못 했다’, ‘내가 조금만 더 말했어야 했다’는 생각에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 고민이 오히려 내게 가장 큰 자산이 되었어.

그리고 사실, ‘SM톡’이라는 앱을 처음으로 사용했을 땐, 무조건 실시간으로 매칭되는 게 두려웠어. 누군가의 말이 곧 결론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됐거든. 그런데 막상 사용해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게 ‘내가 느끼는 걸 공유하는 것’이었어. 단순한 매칭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었다는 게 놀랍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 글을 쓰는 것도, 그곳에서 받은 영감 때문이었어. 다른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나누는 걸 보면, ‘나 혼자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위로가 되더라.

지금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아. 때로는 감정이 격해져서 말이 더 흐트러지기도 하고, 상대가 내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잖아. 하지만 그럴 땐 더 조용히, 더 침착하게 말을 해보려 노력해. 그리고 내가 말하는 걸 그 사람이 반복해주면, 그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몰라. ‘네가 그렇게 느꼈구나’라는 말 하나가, 그동안 참았던 무게를 덜어주는 법이니까.

결국, 관계가 깊어지는 건 단순히 몸이 아닌, 마음이 함께 움직일 때야.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사이엔 숨겨진 기준이 생기고, 그것이 점점 더 무거워져. 하지만 한 번이라도 ‘내가 이렇게 느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서로의 경계를 허락하는 것이 된다는 걸, 나는 이제 정말로 믿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