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시작된 무거운 자극, 과거의 평가가 지금은 보호로 느껴질 때

어제는 정말 이상한 하루였어. 아침부터 뭔가 미묘하게 기분이 안 좋았고, 막상 플레이할 생각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침대에 누워서 손끝을 살짝 움직이고 있었던 거. 주로 빠르게 스쳐가는 감각을 즐기는 편인데, 오늘은 좀 다른 게 느껴졌어. 손끝에서 시작해 등 위로 전해지는 자극이 평소처럼 ‘즐거움’보다는… 더 무겁고, 찌릿한 느낌이었어.

그때 문득, 난 아무리 생각해도 왜 이 순간이 이렇게 무거운지 몰라서 그냥 멈췄어. 숨을 고르고, 눈을 감고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 했는데, 그 순간 팔꿈치를 꺾은 채 누워있던 내 자세가 갑자기 과거로 끌려갔어.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뒤에서 내가 열심히 푼 문제지를 한 장씩 들여다보며 ‘잘 풀었네’라고 말했던 기억. 그때의 목소리가, 지금 이 방안의 조명 아래에서 내 귀를 스쳤어. 비슷한 음색이었고, 어쩐지 뒷목이 쓰리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어.

그런데 진짜 무서운 건, 그 감정이 ‘나쁜’ 게 아니라는 거야. 오히려 따뜻하고, 약간의 안도감까지 섞여 있었어. 그게 나한테 너무도 생소해서, 나는 그저 바닥에 엎드린 채 손을 떨면서 뭔가를 울고 싶은 기분이었어.
왜냐하면, 그 기억은 사실 ‘강압적인’ 관계였거든. 그 선생님은 성실함을 강조했고, 실수는 절대 용납되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 이 순간, 그 강압적인 분위기가, 어째선지 ‘보호받는다’는 느낌으로 변해버렸어. 마치 그 사람이 내게 보여준 ‘평가’가, 이제는 ‘내가 제대로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그널처럼 느껴졌어.

그리고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손끝을 다시 움직였어. 이번엔 더 천천히, 더 부드럽게. 그리고 잠깐 동안, 오래도록 머물렀던 감각이 흘러가지 않게 집중했어.
결국 그 상태에서, 내 몸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반응했어. 평소라면 “아, 이제 끝내야겠다” 하고 끊었을 텐데, 나는 그대로 누워서 눈을 감고, 그 감정이 사라지기를 기다렸어.

몇 분 후, 그건 진짜 끝났지만, 뭔가 달라진 기분이 남았어.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더 고요하고 정화된 기분이 들어.
사실 지금도 그 감정이 가라앉지 않은 듯한데, 그것도 하나의 플레이처럼 느껴져. 어떻게든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그 감정이 내 안에 있는 그대로 있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

그리고 이 이야기를 다 쓰고 나니, 최근에 알게 된 채팅 앱인 ‘SM톡’ 얘기가 떠올랐어. 처음엔 그냥 일상적인 대화들만 올라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한 번은 오픈채팅에서 ‘과거의 감정이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 경험’이라는 글을 읽고서, 그쪽으로 가봤어. 거기서 사람들도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 ‘예전에 겪었던 감정이, 지금은 플레이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거나, ‘처음엔 싫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는 식으로.
그렇게 조금씩 다가오는 말들이,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어.
솔직히 그 전까지는 이런 감정을 ‘플레이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이제는, 그런 순간들도 그냥 ‘나’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어.
그리고 그래서인지, 이제는 그 ‘문제의’ 감정이 다시 찾아올 때, 무조건 피하려 하지 않아.
‘아, 또 왔구나’ 하고, 조용히 바닥에 누워, 그 감정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들어주려 해.

그 이후로도 몇 번 그런 감정이 다시 왔어. 그런데 이번엔 더 달랐지.
처음엔 ‘내가 잘못된 걸까’ 싶었는데, 이제는 그 감정이 오면, “아, 또 왔구나” 하고 그냥 허락해주는 게 되었어.

예를 들어, 어제는 바깥에서 비가 많이 오고 있었는데, 창문 밖을 보다가 갑자기 그 선생님의 목소리가 떠올랐어. 아니, 정확히는 그때의 분위기였어. 방 안이 조용하고, 내가 아무 말 없이 문제지를 쓰고 있을 때, 그분이 가볍게 다가와서 책상 위에 손을 올리는 소리. 그게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나는 그 순간 숨을 멈추고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엔 울고 싶은 생각보다는 ‘그때 나도 이렇게 느꼈던 거야’라는 사실이 더 크게 와닿았어.
그건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내가 그때 어떤 감정을 겪었는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감추며 버티는지까지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였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 감정이 이제는 나를 짓누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 삶의 일부’라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됐어.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스팽을 해봤어. 하지만 이번엔 손끝으로 스치는 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한 번은 살짝 힘을 주고, 또 다른 건 아주 부드럽게 터치했어.
그랬더니, 갑자기 등줄기에 긴장감이 전달됐고, 그 긴장감이 마치 ‘나는 제대로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으로 변했어.
진짜 이상한데, 그 순간, 나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다만 ‘이건 그냥 자극이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를 반응시키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그 후, 잠들기 전에 다시 ‘SM톡’에 들어갔어.
아까는 문뜩 마음에 드는 글 하나를 읽고 나서 꺼냈는데, 이번엔 좀 더 자유롭게 서랍처럼 열어봤어.
그중에 한 글이 눈에 들어왔어. “감정이 플레이 중에 터져나오면, 그건 상대에게 절대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받아들이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 말을 읽고, 나는 깜짝 놀랐어.
왜냐하면, 그게 바로 지금 내가 느끼는 그 감정이었거든.
나는 그저 ‘감정이 났다’고 하기보다는, ‘나는 이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헤매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그것을 ‘기회’라고 표현했어.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정말 조용히 웃었다.
지금까지는 ‘플레이 중에 감정이 오면,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가장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
내가 지금까지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플레이를 통해 조금씩 돌아오는 거라면, 그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야.
단지, 그 감정을 ‘무시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왜 지금 와서 나타났는지, 조금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할 뿐이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 선생님과의 관계 자체가 나에게 폭력적인 것은 아니었어.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 감정을 통제하지 못했고, 그래서 항상 ‘잘해야 한다’는 압박만 남아 있었지.
지금은 그 압박이, 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어.
플레이를 통해,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고, 그때의 감정을 다시 이해하려는 행위가, 결국은 나를 치유하는 과정이 된 거야.

이제는 그 감정이 오면, 나는 더 이상 패닉이 아니라, ‘아, 또 네가 왔구나’ 하고 말해줘.
그리고 그 감정이 사라질 때까지, 그냥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지는 법을 배우고 있어.
그리고 물론, 아직도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는가’ 하는 의문은 남아 있지만, 그것도 이제는 ‘나를 알려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어.

혹시 나처럼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감정이 오면, 무조건 흔들리지 말고,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러봐.
그리고 그 감정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조금만 귀 기울여보는 것도, 플레이의 일부일 수 있단 걸 알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