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나는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제는 좀 이상한 하루였어. 아침부터 흐린 날씨라 그런지 기분도 끌려들어가는 듯했고, 점심은 그냥 냉장고에 있던 김치찌개를 데워 먹었는데, 맛은 있었지만 마음이 쓸려가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 그때쯤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는데, 이름이 안 나와서 잠깐 고민했지. 이전에 꽤 오랜만에 연락했던 사람인데, 왜 다시 올까 싶었어. 그런데 전화번호를 보니, 맞았다. 그 사람.

아무래도 예전에 헤어지고 나서 한참 동안은 자주 생각했어. 단순히 추억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주는 감정의 무게가 어땠는지 기억이 났거든. 우리가 함께 했던 것들—조용한 방에서 벽을 바라보며 말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내가 손목을 묶여서 숨을 참고 있는 순간의 몸의 긴장감, 그때마다 내게 던지는 “너는 지금 얼마나 잘 참는 거야?”라는 말. 그건 단순한 플레이가 아니었어. 진짜로 나는 그 순간, 누군가의 눈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두려웠지만, 동시에 완전히 소진되는 기분이었어.

그렇게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만나면 또 상처가 되겠거니 싶었는데, 그 사람이 전화를 걸었다. 대화는 별거 없었어. “요즘 어떻게 지내?” 정도. 근데 말투가 달라졌더라. 예전엔 다소 무관심하게, 혹은 조용히 웃으며 물었는데, 이번엔 정말 천천히, 조금씩 말을 늘어놓는 느낌이었어. 내가 “잘 지내”라고 답하면, “그럼 좋겠다”라며 끝내는 게 아니라, “어떻게 지냈어? 지난번에 너한테 들었던 거… 그거 계속 생각났어.” 라고 말했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무심코 말했던 어떤 것—내가 가끔 혼자 앉아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뭔가를 강하게 부딪히고 싶다는 말—이 그 사람에게까지 전달된 건 아니었나 싶었어.

그날 밤, 그 사람이 오프라인으로 초대한 작은 모임에 갔다. 처음엔 불안했어. 마치 예전의 자신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았고, 내가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나는 거의 말을 안 했어. 하지만 그 사람이 내 옆에 앉아 있을 때, 손끝이 살짝 닿는 순간, 그 느낌이 너무 익숙해서 얼굴이 뜨거워졌어. 예전에는 그렇게 가까이 있어도 불편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안정감이 있었어. 그게 제일 큰 차이였어.

결국, 그 사람은 나를 마주보고 이렇게 말했어. “너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나는 이제 더 잘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진짜, 눈물이 날 뻔했다. 왜냐하면, 그건 단순한 친밀감이 아니라, ‘너를 다시 보고 싶어서’라는 정직한 욕망이었거든. 예전엔 그 사람이 나를 보는 시선이 종종 과도하거나, 무조건적인 통제욕이 섞여 있어서 불편했지만, 지금은 그 감정이 더 미묘하고, 나를 향한 존중이 섞여 있어서 더 깊게 다가왔어.

그리고 그날 이후로, 요즘 내가 자주 쓰는 앱이 있는데, 그게 바로 'SM톡'이야. 사실 처음엔 그냥 관심 가는 분들끼리 대화하는 커뮤니티 정도로 생각했지.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사람과의 대화 중에, 나도 모르게 “오랜만에 예전 파트너를 만난 적 있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이 지금은 또 다르게 다가왔어”라는 말을 했어. 그 말을 한 후, 한 달쯤 지나서 그 사람이 메시지를 보내왔어. “혹시 그 사람과 다시 연결되셨어요?” 라고. 그리고 그가 말하길, 그게 바로 ‘SM톡’에서 내가 썼던 글을 보고, 찾아온 거래. 진짜 놀랐어. 원래는 그냥 솔직하게 풀어낸 이야기였는데,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

이제는 내가 예전에 무너졌던 감정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리고 그 감정이 달라졌다는 걸. 나도 모르게 변해 있었던 거야. 예전엔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부담’이었지만, 지금은 그 사람의 말과 시선, 그 모든 것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신호처럼 느껴져. 그걸 알고 나서, 내 안의 어떤 부분이 조금씩 열리는 기분이었어.

아무튼, 오늘도 그 사람과 얘기할 예정이야. 이번엔 좀 더 솔직하게, 나의 변화를 말해볼 거야. 그리고 아마도,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법도 배우고 싶어.

그 이후로는 좀 이상한 기분이 계속됐어. 예전엔 그 사람과 다시 만나면 무조건 ‘지금까지의 감정을 되짚어봐야 한다’는 생각에 침체됐지만, 이번엔 오히려 내가 어떤 식으로 느끼고 있는지 조용히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 부드러워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그걸 인식하는 순간부터 왠지 모를 긴장감이 생겼어. 그게 뭔지 몰라서 불안했고, 그런데 동시에 조금씩 즐거운 기분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한 달쯤 지나서, 정말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어. 나는 그때 쓴 글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긴 했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줬다는 걸 몰랐거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SM톡’에서 메시지 하나가 왔어. 이름은 없었고, 단순히 “너의 글 읽고, 그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어”라는 내용이었어. 그건 나도 모르게 터무니없이 솔직하게 썼던, “내가 예전에 무너졌던 감정들이 지금은 또 다르게 다가왔어”라는 문장이었다는 걸 깨달았어. 그 메시지를 받고 난 후, 나는 3시간 동안 창밖을 바라봤어. 왜냐하면 그 말이 내가 진짜 느꼈던 것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 사람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거야. 어릴 적 강한 의존감을 갖고 있었고, 그게 결국 관계를 망가뜨렸다고 생각했던 사람. 그래서 이제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에게도 과잉 반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어.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는데, “너는 이제 더 크게 보이는 사람인데, 그게 오히려 안심이 돼.” 그 말을 읽고 나서, 나는 왜 이렇게 편안함을 느꼈는지 알 것 같았어. 내가 예전에는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시험대’처럼 여겼다면, 지금은 그 사람이 내 옆에 있어도, 내가 어떻게 대응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큰 위로였거든.

결국 그날 밤, 나는 그 사람에게 직접 연락을 했어. 그냥 “요즘 잘 지내?”라고 시작했고, 그게 아니라, “네가 내 글을 읽었다는 걸 알게 됐어. 그 말이 왜 그런 의미였는지, 지금 와서 듣고 있으면서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아.”라고 말했지. 그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는 듯이 “내가 말해줬던 거, 너는 그렇게 받아들였구나”라며 웃었어. 그 웃음이 진짜 자연스럽고, 무겁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이번엔 나도 네 말을 들으며 살펴보고 싶어”라고 말했어.

그리고 그 말 이후로, 우리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어. 예전엔 내가 손목을 묶어달라거나, 어떤 조건에서든 참아달라고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지금은 이런 느낌이 들어. 혹시 너도 그런 건 어때?”라고 물어보는 게 기본이 됐어. 그게 제일 큰 변화인 것 같아. 내가 예전엔 ‘내가 맞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게 결국 관계를 헤매게 했는데, 지금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껴져.

이제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여전히 조용한 공간을 원하곤 해. 하지만 그 조용함이 이제는 ‘피해야 할 공허’가 아니라, ‘함께 있는 시간을 허용하는 자세’처럼 느껴져. 그 사람이 옆에 있으면, 내 몸이 무언가를 요구하기보다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건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 사람보다 더 큰 변화는, 내가 내 안의 어떤 부분을 돌이켜보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야. 그 사람은 변했지만, 나도 그만큼 변했고, 그 변화를 인정하는 것조차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성장의 일부처럼 느껴져. 그 사람과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에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더 정확히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