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절대 못 하는 건 광범위한 하드리밋이었어

어제는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잠깐 생각해봤다. 어쩌면 이건 내가 오랜만에 진짜로 ‘내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순간이었나 싶기도 하고. 하드리밋이라는 걸 처음 말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조금은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때의 그 감정은 아직도 생생해서, 글로 풀어내고 싶더라.

처음으로 하드리밋을 말했던 건, 지난 여름쯤이었던 것 같아. 파트너와의 만남이 어느 정도 안정된 시점이었고, 우리는 한적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일요일 오후였는데, 왠지 마음이 무거웠던 거야. 아마도 몇 달 전부터 내 안에 쌓여 있던 무언가가, 이젠 숨기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던 건지.

그러다 말문이 트이긴 했는데, 정말 초조하고 불안했어. “혹시… 나, 어떤 건 절대 못 해”라는 말을 시작했을 때, 목소리는 벌써 다 떨렸고, 눈을 맞추지도 못했다. 애초에 나는 그런 걸 말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고, 특히 남자에게 그런 걸 말하려니 더더욱 두려웠어. ‘내가 너무 과하다’거나 ‘이 사람, 나를 싫어하겠구나’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

그래서 조용히, 마치 지폐 한 장을 내밀듯이, 딱 한 문장만 던졌다. “내가 절대 못 하는 게 있어… 그게 바로 광범위한 하드리밋이야.”

말하자마자, 카페 안의 소음이 갑자기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어. 주변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시간이 멈춘 것 같았고, 그 말을 끝낸 후 3초쯤은 아무도 말을 안 했지. 그러다 파트너가 천천히 커피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어. “…알았어. 그래도 말해줘서 고마워.”

그 말이었지. 그 단순한 말 하나가, 나한테는 너무 큰 위로였다. 내가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고, ‘나는 이렇게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했을 때, 그 사람이 ‘괜찮아’라고 말해준 게. 그게 참 의미 있었어.

그 이후로는 조금씩 서로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고, 오히려 더 깊은 신뢰가 생겼던 것 같아. 내가 무조건적인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건 안 된다’는 걸 먼저 말할 수 있다는 게, 결국 관계의 균형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느껴져. 매번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또 설레고 긴장되지만, 이제는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됐어.

사실 그때부터는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먼저 말하는 게 자연스러워졌어. 그게 나한테는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는데, 지금은 당연한 거처럼 느껴져. 그리고 최근에는 온라인에서도 그런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우고 있는데, 요즘 자주 쓰는 채팅 앱 중 하나가 바로 **SM톡**이야. 오픈채팅보다는 훨씬 조용하고, 메시지 하나하나에 무게가 있어서, 이런 민감한 주제를 말할 때도 좀 더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더라. 처음엔 별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정작 나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리밋을 나누는 게 가능한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어.

결국 그날의 말은, 내게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나는 여기까지’라는 선을 세우는 시작이었단 걸 알게 됐어. 그리고 그 선을 함께 만들어가는 게, 진짜로 신뢰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그 후엔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내가 말한 그 ‘하드리밋’ 때문에 관계가 어색해질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어. 파트너가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는 건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게 무언지 몸으로 느껴졌지. 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없고, 어떤 상황에선 절대 버틸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는 게, 오히려 나를 더 안전하게 받아들여주는 힘이 됐던 거야.

그리고 한 달쯤 후, 그녀가 내게 이렇게 말했어. “네가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네가 원하는 걸 알 수 있었을까? 너의 그런 부분이 너무 중요한데, 나는 그냥 ‘안 해도 되니까’라고 넘겼을지도 몰라.”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깨달았어. 내가 ‘못 한다’는 걸 말한 게, 사실은 ‘내가 이걸 원한다’는 또 다른 표현이었단 걸. 그게 바로 나에게 가장 큰 위로였어. 난 오랫동안 자기 감정을 숨기려고만 했는데, 그게 오히려 관계를 단단히 만들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감정이 생겼어. 그건… 죄책감이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안함’이 아니라, ‘나는 왜 지금까지 이걸 말하지 못했을까’라는 후회였다. 내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침묵했는지, 왜 그걸 ‘사실’이라기보다는 ‘문제’처럼 여기며 두려웠는지, 다시 돌아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일 같아. 그 동안 수많은 플레이에서 내가 괜찮다고 했던 순간들 중에는, 정말로 ‘괜찮았다’기보다는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는 순간들이 많았던 거야. 그게 결국 나를 피로하게 만들고, 관계에도 부담을 주었던 걸까.

지금 와서 보면, 하드리밋을 말하는 건 단순한 ‘경계 설정’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방법’이란 걸 알게 됐어. 물론 여전히 말할 때는 심장이 뛰고, 손끝이 떨리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그 불안함이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아니라, ‘나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믿음과 함께 온다는 게 신기하더라.

그리고 최근에 스마트폰 속에서 발견한 메시지 하나가, 또 다른 감정을 자극했어. 그건 내가 처음으로 하드리밋을 말했던 날, 파트너가 보내준 마지막 메시지였어. “오늘 얘기해줘서 고마워. 다음엔 내가 네가 좋아하는 걸 말해줄게.”
그때는 그냥 감사하다는 말로 넘겼지만, 요즘 다시 읽어보니, 그게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내가 너를 더 알고 싶다’는 암시였다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그게 지금도 계속 작동하고 있어.

최근엔 내 성향에 맞는 플레이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선 더 명확하게 ‘정중하게 거절’할 줄 알게 됐어. 예전엔 거절할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는데, 이제는 ‘나는 이거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몰랐어.

그래서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하드리밋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 오히려 말할 때마다, ‘내가 누군가에게 조금 더 진실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그리고 아무래도 그건 다 **SM톡**에서 사람들과 대화하며 배운 거겠지. 오픈채팅에서는 소리가 커지고, 서로를 격려하거나 조롱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곳은 분위기가 조용하고, 각자의 리밋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나 같은 사람이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 같아.

아직도 매번 말할 때는 긴장되지만, 이제는 그 긴장이 ‘부담’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순간’이라는 걸 알아. 그것이 나에게 가장 큰 성장이자, 가장 아름다운 리듬이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