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처음으로 장기적인 플레이 관계를 맺게 된 사람이 생겼어. 상대는 오랜만에 만나는 옛 친구였는데, 예전엔 전혀 몰랐던 성향이 있다는 걸 나도 모르게 발견하게 됐고, 그걸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한 번 도전해봤지. 그 전까지는 대부분 짧은 만남이나 테스트 기간 같은 걸로 끝내는 게 익숙했거든.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어. 서로를 더 신뢰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게 무서웠다는 말이야.
그런데 바로 그 순간부터 고민이 시작됐어. 세이프워드를 어떻게 정해야 할까. 단순히 ‘아니’라고 외치는 거면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진짜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들려면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서 집에서 쓰는 책상 앞에 앉아서 종이에 꼼꼼히 적어봤어. ‘무조건 중단’ 조건이라든가, 특정 단어를 사용하면 즉시 멈추기, 그런 건 기본이니까. 근데 문제는 그 이상의 부분이었어. 나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이 있었고, 특히 힘든 상황에서는 오히려 ‘괜찮아’라고 말하는 게 더 편했거든. 그래서 만약 정말 아프거나 지쳤는데도 “괜찮아”라며 계속 하다가는, 결국 본인을 속이는 거잖아.
그래서 고민한 건, 내가 실수로 힘들어도 “괜찮아”라고 말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었어. 마침 이전에 보던 글에서 ‘감정 상태를 숫자로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게 있길래, 그것을 응용해봤어. 1~5까지로 나의 상태를 매긴 거야. 1은 ‘지금 다 좋아, 이대로 계속해도 되겠음’, 5는 ‘이제 안 된다, 멈춰야 해’. 그리고 미리 합의한 대로, 4 이상이면 자동으로 리스크 체크 절차가 작동하도록 했어. 이건 사실 내 마음속에 있는 ‘지금은 괜찮다’라는 거짓말을 덮어씌우는 걸 막기 위한 장치였어. 왜냐하면 실제로는 이미 3인데도 ‘괜찮아’라고 말하다 보면, 4가 될 때쯤엔 과도한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어야 하고, 그때서야 ‘아, 이거 너무 심각하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그리고 그걸 실제 적용한 건, 지난주 일요일 밤이었어. 주말에 만나기로 한 자리였고, 처음엔 모두 잘 진행됐어. 분위기도 좋고, 상대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줬고. 그런데 시간이 지면서 가벼운 스트레스가 누적됐어. 어쩌다 문득 눈이 부셨고, 숨이 차는 느낌이 들었어. 그걸 알아차리자마자 내 손가락이 트래블버튼을 눌러야 할지, 아니면 그냥 넘기면 될지 고민했어. 그 순간, 4가 떠올랐어. 나는 진짜 4였어. 혼자서 판단하기엔 너무 위험했으니까. 그래서 그 자리에서 조용히 상대에게 ‘지금 감정 상태 4인데, 잠깐 정지하자’라고 말했어. 그 말을 했을 땐 손이 떨렸고, 입술도 바짝 말라갔지만, 동시에 ‘내가 제대로 행동했다’는 안도감도 느꼈어.
결과적으로 그날 이후로 우리 사이에 새롭게 생긴 약속 하나가 더 생겼어. 바로 ‘세이프워드는 나의 권리이자 책임이다’라는 것. 내가 아무리 막을 수 없는 감정을 겪더라도, 그걸 숨기는 게 아니라 공유하자는 거야. 물론 그렇게 하면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었어.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 그게 무엇보다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
요즘은 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또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도 늘어났는데,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세이프워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이제는 익숙해졌어. 오픈채팅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뭐든 가능해’라며 자기만의 규칙을 모른 채 나아가는데, 반면 이런 거는 진짜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최근에 알게 된,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람과도 일단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했고, 그 후로는 더 자연스럽게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됐어.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너무 많이 줄 필요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야. 나는 요즘 쓰고 있는 채팅 앱인 SM톡에서 처음으로 그런 대화를 나누게 됐어. 여기선 메인 커뮤니티가 많아서 정보도 많고, 사람들이 정말로 경험담을 나누는 분위기가 있어서, 내가 고민했던 세이프워드 설정 같은 걸 직접 질문해보는 것도 편했어. 오픈채팅처럼 빠르게 결론 내리는 것보다는, 더 진지하게 상대와 소통할 수 있었고, 그게 내 선택을 더 확신하게 만들어줬어. 어쩌면 처음엔 이 앱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잘 몰랐지만, 지금은 그게 내 안전망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