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냥 스케줄이 비어서 잠깐 브라우저를 열었는데, 뜬금없이 'SM톡'이라는 앱을 눈에 띄었다. 처음엔 그냥 지나칠 뻔했지만, 이름 자체가 다소 익숙한 느낌이라서 막상 들어가 보게 됐다. 평소에는 오픈채팅 같은 걸 거의 안 쓰는 편인데, 그건 어쩌다 자주 오는 한 명의 파트너에게서 들은 말 때문이기도 했다. "오픈채팅은 너무 넓고 아무도 진심으로 안 듣는다"며 그렇게 말하더니, 대신 이 앱에서 본인의 성향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무심코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거지, 내가 실제로 이 앱을 써보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는데… 결국 하나의 실험처럼 시작하게 됐다. 내 프로필도 별거 없이 짧게 썼다. "약간의 경계선에서 놀고 싶은 사람", "조금은 고요한 강압감도 좋아함", "대화부터는 괜찮아요". 이렇게 쓰는 순간부터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대화를 통해 감정을 풀어내는 걸 좋아하지만, 그걸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하긴 어렵다. 그래서 그런 만남이든, 상호작용이든, 딱히 예민해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조용한 흐름을 즐기려는 성향이 있거든.
그리고 그랬던 게, 몇 일 후에 한 메시지가 왔다. 간단한 인사였고, 나의 프로필을 언급하며 "비슷한 기분을 가진 사람 같아서 반가웠어요"라고 했다.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그게 왜인지 모르게 마음을 움직였다. 전형적인 '좋아요'나 '잘됐다' 같은 틀에 박힌 말이 아니라, 뭔가 내 말투와 맞닿아 있는 듯한, 정확한 리듬이 있었다. 이후 우리는 서서히 대화를 늘렸다. 처음엔 뭐가 좋았는지, 어떤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느꼈는지 정도로 시작했는데,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제대로 아픈 감각을 느끼기 위해선, 먼저 침묵이 필요해요. 뭔가 통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손끝이 닿기 전까지의 긴장감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라고 썼다. 그 순간 바로 답이 왔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손끝이 닿기 전의 시간이 가장 중요한 건 알지만, 걱정되는 건 제가 도착하기 전에 당신이 이미 끝내버릴까 봐요." 그게 정말 묘하게 공명했다. 우리가 원하는 게 서로 비슷하다는 걸 확인한 순간, 그야말로 공감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두 달쯤 지났을까. 서로의 일상을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고, 특히 요즘은 내가 주로 사는 동네의 작은 카페 이야기를 했다. 그곳은 창밖이 잘 보이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곳이었고, 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거기에 앉아서 글을 쓰곤 했다. 그러다가 한 번은 "오늘 저녁에 그 카페 가면 혹시 만나실 수 있을까요?"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난 당황했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빠져들었다. 그만큼 신뢰가 생겼다는 뜻이니까.
그날, 나는 정오에 그 카페를 찾았다. 입구에서 살짝 어색한 듯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마치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겹치는, 하지만 조금 더 조용하고 둥글둥글한 느낌이었다. 서로 눈을 마주쳤을 때, 그냥 웃음이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러나 너무 자연스러운 순간이었다. 자리에 앉고, 술 한 잔을 시켰다. 대화는 여전히 부담 없이 흘렀다. 오픈채팅처럼 뭔가 쫓기는 느낌도 없었고,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미리 추측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가 함께 만든 대화의 흐름이, 현실로 이어졌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그 이후로 우리는 몇 번 더 만났다. 처음엔 그냥 쉬운 대화를 나누고, 차차 각자의 성향을 더 구체적으로 조율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중 하나가, 그녀가 내게 '아프게 하되, 반드시 피드백을 요구한다'는 플레이를 제안했을 때였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그녀가 그걸 어떻게 할지 말하는 방식이 너무 정교해서, 나는 그저 "그럼 내가 뭘 느꼈는지, 언제 다 버티지 못했는지 알려달라"고만 했다. 그게 사실 내게는 최고의 리듬이었다. 아픔이 아니라, 그 아픔 속에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것을 같이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지금도 나는 종종 그녀를 만난 장소로 다시 가는 걸 생각한다. 그 카페의 창밖이 변하고, 계절이 바뀌어도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모든 게 가능했던 건, 단지 서로의 성향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대화가 진짜로 '나'를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다.
물론 누군가는 '그런 걸 앱에서 어떻게?'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이 앱이 단지 연결의 도구가 아니라, 진짜로 감정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거였다. 오픈채팅 같은 곳은 정보가 넘쳐나지만, 진짜 '나'를 말하는 건 어려워. 그런데 여기서는, 한 줄 한 줄을 믿고 쓰는 사람이 있어. 그게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와의 관계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아직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알고 있는 건, 내가 처음 이 앱을 열었을 때는 그냥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그게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더 잘 알게 됐고, 그걸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모든 게, 'SM톡'이라는 앱 덕분이겠지만 —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걸, 누군가가 듣고 싶어했다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