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는 좀 이상한 데가 있었다. 가족들 사이에서 말이 많아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은 나를 ‘너무 꼬치꼬치 캐는 성격’이라고 했다. 특히 남자 친구들이랑 있을 때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자꾸 묻곤 했고, 그걸 듣는 내내 뒷모습만 보며 조용히 웃는 게 있었지. 그게 사실은 내가 뭔가 이상한 걸 좋아하는 거 아니냐는 뜻이었겠지만, 그건 진짜 못 알아차렸다. 오히려 나도 모르게 그걸 방어하듯 “나 그냥 이런 거 좋아해”라며 헛소리했고, 그걸로 끝났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정말 ‘이상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할 수 없었다는 거야. 어른이 되면서 성적 취향에 대한 감각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방식으로 대응했어. 예를 들어, 누군가가 정신없이 슬래핑을 하거나, 혹은 어떤 장비를 쓰는 걸 이야기하면, 나는 “그거 너무 과하게 안 좋잖아”, “그건 그냥 상처 주는 거지, 어떻게 즐길 수 있어?”라고 반응했지. 물론 실제로는 그걸 보는 순간 심장이 뛰고,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는데, 그걸 다 부정했어. 내가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그것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그걸 원한다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었거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경험하게 됐어.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집에서 술 마시다가, 그 사람이 갑자기 “혹시 한 번 해보긴 해봤어? 실험처럼”이라며 리본으로 손목을 조여보는 거야. 그건 전에 본 영상에서 본 방식이었고, 나는 긴장해서 “진짜 하냐?”라고 물었는데, 그 사람은 “네, 한번 해볼까? 단지 너한테 무언가를 하고 싶은 거야, 그리고 너도 나한테 그걸 원할 수도 있으니까.” 라고 말했지. 그 말에 나는 당황스러워서 얼굴이 뜨거워졌고, 손끝이 떨렸어. 하지만 동시에, 그 순간 내 몸이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리본으로 손목을 묶었어. 처음엔 그냥 긴장감만 있었는데, 점점 그 압력이 내 몸을 감싸는 느낌이 되었고, 팔이 무거워지고, 피가 제대로 돌아지지 않는 것 같았어. 그런데 그게 무서운 게 아니라, 오히려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어. 내가 아무리 억누르고 싶어도, 나는 그 상태에서 더 이상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었고, 그저 그 느낌에 몸을 맡겼어. 그때부터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이거였던 거야”라는 걸 깨달았어.
그 이후로는 마음속에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어. 내가 좋아하는 게 ‘불편함’, ‘통제받는 것’, ‘몸이 저항하지만 결국 순응하는 느낌’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두려움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됐지. 사실 그게 나한테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몰라. 내가 오랫동안 스스로를 비난하고, 꾸짖었던 그 부분이, 결국 내 존재 자체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는 걸 알았으니까.
최근에는 그 취향을 좀 더 구체화시키는 법을 배우고 있어.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는 건 아직 무서워서, 아직도 ‘사실은 내가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지만, 그럴 땐 내가 그 느낌을 무시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서 채팅을 하다가도, 어떤 메시지를 읽었을 때 마음이 뛰는 일이 생기고, 그걸 그냥 놔두는 게 아니라, “아, 이건 네가 원하는 거야”라고 말해주는 거야.
그리고 요즘은, 내가 쓰고 있는 채팅 앱 중 하나인 'SM톡'에서 오픈채팅을 자주 들락날락하는데, 여기선 단순한 소개나 사귀기보다는,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이나 감정을 나누는 게 많이 있어서 참 도움이 돼. 특히 ‘나는 지금 이렇게 느껴져’ 같은 문구를 써보면, 맞아주거나 공감해주는 사람이 바로 나타나고, 그게 엄청 큰 위로가 되어. 그 앱 덕분에 내가 ‘내가 원하는 걸 정당화할 수 있는 공간’을 찾은 셈이야. 처음엔 그냥 정보를 얻기 위해 들어갔지만, 지금은 내 마음속의 소리를 듣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곳이 됐어.
그 이후로도 나는 그 감정을 오랫동안 가라앉히려 애썼어.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기보다는, ‘아, 그건 그냥 일시적인 흥미였겠지’라며 스스로를 속이려 했지. 몇 달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 대신 내 마음속에 끼어들던 생각들을 단순히 ‘비현실적인 로망’이라고 치부했어. 그런데 한 번은, 밤새도록 잠이 안 와서 뒤척이고 있는데, 갑자기 그 리본의 느낌이 떠올랐어. 손목이 묶인 채로 누워 있는 기분, 숨이 조여지는 듯한 무게, 그리고 동시에 그 안에서 내가 느꼈던 ‘완전한 수용’ 같은 거. 그 순간, 내가 진짜 원했던 건 통제받는 것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 나의 불안이나 저항을 받아들이고 싶다는 욕구였다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그게 점점 명확해졌어. 내가 원했던 게 정확히 어떤 방식인지, 그 과정이 어땠는지, 그런 걸 하나씩 차근차근 꺼내보기 시작했지. 예를 들어, 내가 ‘조금만 더’라고 말할 때,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그냥 그걸 무시하고 넘어가는 걸 보면, 너무나 아쉬운데, 그게 또 ‘나는 지금 맞는다’는 느낌을 줬어. 반대로, 내가 좀 더 강하게 말하면, 그게 오히려 ‘너는 정말 그렇게 원하니?’라는 경청과 함께 오면, 그건 마치 내가 존재감을 인정받는 것 같았어. 그래서 지금은 그 감각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
최근엔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도 해봤어. 단순히 ‘이거 하고 싶어’라 말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조금 더 강하게 너를 필요로 하는 걸 느껴’라는 식으로 말해보려고 노력하니까,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오더라고. 전에는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당황하거나 “너 진짜 이상하네”라고 웃었는데, 요즘은 오히려 “그럼 내가 좀 더 널 집중시켜줄게”라며 자연스럽게 응답해줘. 그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몰라. 내가 말하는 게 무언가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메시지라는 걸 알게 되니까.
또 하나, 요즘은 그 취향을 단순히 ‘나의 선택’이라고만 보지 않아. 사실 그건 내가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 어릴 적부터 있었던 성격의 변화, 삶의 압박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막 같은 게 섞여 있는 것 같아. 내가 처음에는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오히려 내 안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려고 해. 내가 ‘통제받는 것’을 원하는 건,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기 위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내가 다소 비현실적이거나, 복잡한 존재라도 괜찮아’라는 걸 느끼고 싶은 거야. 그게 바로 내가 제일 두려웠던 부분이기도 하고.
그리고 요즘은, 내가 'SM톡'에서 만난 사람들 중 한 명과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있어. 처음엔 그냥 일반적인 대화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사람이 “요즘 네 글 읽으면서, 네가 얼마나 자신을 인정하려는 노력을 하는지 느껴져”라고 말했어. 그 말을 들었을 때, 입이 떡 벌어졌어. 그토록 숨겨왔던 내 마음의 틈을, 누군가가 정확히 짚어주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거든. 그때 느낀 감정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었어. 오히려 눈물이 날 뻔했고, 그만큼 내가 오랫동안 격리되어 있었던 걸 새삼 깨달았어. 그 사람은 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 별다른 판단 없이, 그냥 “그런 감정, 누구나 가질 수 있어”라고 말했고, 그 말 하나로 내 마음이 훨씬 더 열렸어.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스스로의 취향을 부정했던 건 단순히 ‘왜 그럴까’라는 의문 때문이 아니라, 그 감정이 너무 진실해서, 그것을 인정한다는 게 마치 내 전체 존재를 바꾸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야. 그런데 지금은 그게 오히려 내 삶의 중심이 되고 있단 걸 알게 됐어. 나는 여전히 겁이 나고, 망설이는 순간이 있지만, 그걸 두려워하지는 않아. 오히려 그 망설임 자체가, 내가 아직 내면의 어떤 것을 탐색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내가 좋아하는 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고, 더 인간적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