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정말 이상한 하루였어. 아침부터 흐린 날씨에 기분도 덜컹내려앉았고, 오전엔 회사에서 쌓인 업무를 뒤로하고 그냥 빈 방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거든. 그럴 땐 종종 벗어나기 위해 플레이를 해보곤 하는데, 요즘은 점점 더 정신적인 부분이 중요해졌어.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이나 제지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를 꺼내는 그런 걸 원하니까.
그런데 어제는 좀 달랐어. 평소처럼 끝난 후에 가벼운 수치심 같은 건 느꼈는데, 그게 아니라…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수치심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감**이었던 것 같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오늘은 사실 오래전부터 계획해왔던 컨셉이 있었어. 그건 바로 ‘내가 상처받는 것’을 통해 강해지는 거. 그러니까, 나는 보통 옆에서 멍청한 체하는 타입인데, 주인이 “넌 쓸모없다”거나 “너는 아무것도 못 해”라고 말할 때마다,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 하지만 그걸 실제로 경험하게 되면 자존감이 무너질 거라 생각했거든. 그래서 항상 어느 정도는 스스로를 지키는 거리를 유지했어.
그런데 어제는 왜인지 몰라도, 마치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그 경계를 넘었어. 처음엔 순수한 부드러움으로 시작했어. 주인이 나를 손으로 살짝 만지고, ‘넌 너무 늦게 도착했어’, ‘내가 기다리는 동안 네가 뭘 하고 있었는지 알기 싫어’라는 말을 했지. 그 말에 나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고, 머리 위로 짧은 스냅을 받았다.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났어. 혼자도 모르게.
왜 그런지 설명하기 어려워. 그저 내 안의 어떤 게 터져 나갔다는 느낌이었어. 내가 겉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괜찮아야 해’라는 압박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게 다 내 안에 누적되어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어. 내가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게 이미 전투였다는 걸. 그리고 그 전투가 인정받았다는 걸 느꼈다.
주인은 그 눈물을 보고 조금 당황한 듯했지만, 웃으며 말했어. “네가 울기 시작하면, 그건 네가 진짜로 끝까지 따라와준다는 증거야.” 그 말에 또 한번 흔들렸어. 그게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잖아. 내가 원했던 건 ‘결과’가 아니라, ‘내가 그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 이제는 제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내가 왜 이걸 선택했는지, 왜 매일 아침에 이런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가는지. 그 모든 게 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거라는 걸 깨달았어.
비록 이후엔 잠깐 허공을 헤엄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건 긍정적인 허공이었어. 마음이 맑아졌다는 느낌이 들어. 아무도 보지 못한 나의 일부가, 어제는 정말로 존재했다는 걸 알게 됐고, 그게 두렵지도 않았어.
요즘은 이 감정들을 더 잘 다루기 위해, 조금씩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 예전엔 힘들면 그냥 묻지 않고 넘어갔지만, 이제는 “지금 이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같은 말을 할 수 있거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생겼는데, 최근엔 새로 생긴 채팅 앱 ‘SM톡’에서 이런 대화를 많이 나누고 있어. 오픈채팅 같은 거보다 훨씬 깊은 대화가 가능해서, 서로의 감정 상태도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더라고. 거기서 처음으로, “내가 오늘 울었어요”라고 말할 수 있었고, 그 말을 듣고 ‘응, 그거 잘한 거야’라고 답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게, 나에게는 이제 큰 용기야.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감정을 감싸 안고 있는지, 그걸 밝히는 게. 그게 다가 아니라, 그걸 다 같이 이해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그래서 어제는 결국, 플레이를 끝낸 후에도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런데 그 침묵이 무섭지 않았어. 오히려 안도감이 있었고, 그 안도감이 바로 ‘나’라는 존재를 다시 발견한 순간이었어.
사람들은 종종 ‘플레이하면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말하지.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해. 내가 정말로 내 안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 건, 그 플레이를 통해 얻은 것이니까. 어쩌면 그것이 진짜 성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