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자꾸만 생각나는 게 있었어. 그건 내가 어쩌다 집에 와서 아무것도 안 쓰고 그냥 앉아있을 때 느끼는, 내 마음이 뭔가 빈 듯한 느낌이었지. 몸은 있고 정신도 있는데,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왔어. 그래서 한참 동안 책상 앞에서 쳐다만 보다가, 갑자기 이불 위에 누워 있는 내 손을 바라보았어. 손끝이 흔들리는 걸 느꼈거든. 마치 지금 당장 뭔가를 잡아야 한다는, 그런 짐작 같은 게.
그때문에 내가 처음으로 직접 도구를 만들게 된 거야. 정말 작은 일인데, 그게 내 플레이의 전환점이 되었어.
일단은 별거 없었지. 그냥 평범한 스카프 하나, 맨손으로 하던 걸로 끝내고 있던 시절이었고, 그저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만 따라가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른 채 살았어. 그런데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뭔가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뭘 원하는지’를 확인해보려면, 뭔가를 직접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었지.
그리고 나는 첫 번째 도구를 만들었어. 아주 단순하게. 아파트 베란다에 있던 스텐 용기를 깨끗이 닦고, 뚜껑을 제거한 다음, 그 안에 고무줄 두 개를 넣고 끝부분을 꼬았다. 딱 그 정도였는데, 그것이 내게는 너무나 강력한 물체였어. 고무줄이 늘어나면 부드럽게 긴장되고, 다시 조여지면 치명적인 통증이 들어오는 식이었지. 절대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반응이었고, 나는 그걸 통해 ‘내가 느끼는 기준’을 알 수 있게 됐어.
처음엔 무섭기도 했어. 고무줄이 뚝뚝 끊길까 봐. 손가락이 너무 멍해질까 봐. 하지만 그렇게 두 번 세 번 해보니까, 점점 ‘나의 경계선’이 명확해졌어. 그 도구가 뭐든, 오래 쓰거나 다듬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게 내게는 마치 ‘나의 기준을 측정하는 척도’처럼 느껴졌지.
그러다 최근에, 좀 더 진지하게 도구를 준비하려는 생각이 들었어. 어쩌다 옛날에 만든 유리병과 파이프가 아직 남아 있어서, 다시 그걸 활용해봤어. 유리병은 크기가 작아서 손에 잘 맞고, 내 손끝이 움직이는 순간마다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어. 파이프는 끝부분을 굽혀서 압력을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고, 실제로 사용해보니, 가볍게 눌렀을 때와 세게 눌렀을 때의 차이가 확실히 느껴져서 참 좋았어.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제어 가능한 위험성’이었지.
그런데 이 모든 걸 구체화하기 전에, 또 다른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어. 지난 주말, SM톡에서 갑자기 생긴 오픈채팅에 들어갔더니, 한 사람이 “내가 직접 만든 도구가 허용되는지 궁금해요”라고 질문을 올렸어. 그 문장을 보고, 갑자기 머릿속이 탁 훤해졌어. 그 사람의 말이 ‘내가 어떻게 편안하게 뭔가를 만들고 써야 할지’에 대한 답이 되었지. 그리고 그걸 보고, 결국 나는 그 자체를 ‘선택의 결과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어. 내가 만든 도구는 그저 도구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증명하는 물건이었으니까.
지금은 매주 한 번씩, 그 도구들을 정리하고 청소해줘. 써본 후에는 반드시 닦고, 보관하는 방식도 따로 정해놨어. 뭔가를 만든다는 건, 단순히 재료를 조합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행위’라는 걸 깨달았거든.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니까.
그리고 요즘은 이 도구들 덕분에, 팔로워들도 조금씩 내 플레이 방식을 이해해주는 것 같아. 내가 그저 ‘좋아하는 걸 하자’는 말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말이다.
어떤 사람은 완성된 제품을 사는 게 좋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전통적인 도구를 선호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것보다도 ‘내 손끝이 닿는 순간, 내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중요하게 여겨. 그것이 결국 나만의 플레이 도구가 되는 거야.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그걸 만드는 과정 자체였다는 걸 알게 됐어. 내가 고민하고, 실패하고, 또 다시 시도했던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뭔가를 허용해주고, 동시에 제한을 줬어.
그래서 지금은, 사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도구들은 다 나의 기억이에요. 비록 소소한 것이지만, 각각의 도구는 내가 겪었던 한밤의 고뇌, 한 방의 공허함, 그리고 한 번의 용기로 만들어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