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플레이를 할 때든, 내가 편안하게 느끼기 위해선 경계가 있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진짜 그 의미를 깨달은 건 지난번 펜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처음엔 그냥 ‘그냥 좀 해보자’는 식으로 시작했고, 파트너도 괜찮아 보였던 게, 결국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사람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 가장 부드럽게, 조용히 다가오는 타입이었고, 말투도 차분하고 정확해서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이 사람이라면 뭐든 다 들어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의식적으로 조금씩 내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내가 원래 자주 쓰는 말 중 하나가 “내가 뭘 더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뭐든 시도해봐도 괜찮아”인데, 이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이란 걸 그때서야 알았다. 그 사람은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서, 나에게 “그럼 지금부터는 네가 제일 위험한 거라도 시도해봐”라고 말하는 거였다. 그 순간, 속에서 뭔가 뚱글랑 뒤집혔다. 나는 말로는 ‘괜찮아’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몸이 움츠러들었고,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 이거… 안 되겠다.”
하지만 그때는 왜 안 되는지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었다. 오히려 ‘내가 너무 민감하구나’, ‘정말로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까지 들면서, 그저 ‘내가 좀 더 허용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더 자신을 비틀고 있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혼자 숨을 고르며 문득 떠올린 게 있었다. 내가 정말로 원했던 건, ‘그 사람이 나를 압도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편하게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었단 걸. 플레이 자체는 매력적이었지만, 그 안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통제되고, 어떤 경계를 넘어서는지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면, 그건 사실상 소외감과 같은 감정을 낳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다음 날 아침, 나는 조용히 그에게 말했다. “지난번엔… 좀 이상했어. 나한테 말한 거 다 잘 이해했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 너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걸 잘 봐줬으면 좋겠어.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그냥 멈춰줘.”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알았어. 그걸 미리 말해주면 얼마나 쉬운 일이었을까.”
그 말을 듣고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동안 내가 계속 ‘적당히 넘어가는 것’을 선택한 이유가, 결국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걸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고, 그 믿음이 깨졌을 때의 공허함이 바로 그런 반응이었던 거였다.
결국 우리는 그 이후로 두 번 더 만났고, 그때마다 처음엔 대화를 통해 ‘오늘은 어디까지 가능할지’를 조용히 논의했다. 예를 들어, 목줄은 사용 가능하지만, 얼굴에 테이프는 절대 안 된다, 혹은 접촉은 가능하지만 힘을 주는 건 3초 초과 금지,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느꼈던 건, 오히려 그 경계가 있기에 더 자유로웠다는 점이었다.
경계를 정하는 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내가 ‘이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 마음이 아직 내 손에 있다는 증거니까.
최근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에도 항상 ‘이건 나의 리밋이야’라는 말을 먼저 꺼낸다. 물론 상대방이 어색해하거나 당황할 수도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웠다는 거니까.
그리고 요즘은 채팅 앱으로도 좀 더 신중하게 만나고 있는데, 그중에서 최근에 발견한 게 ‘SM톡’이라는 앱이더라. 오픈채팅보다는 정보가 더 구체적이고, 플레이에 대한 관심도 분명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처음부터 경계를 묻거나 공유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더라. 본인의 리밋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게 오히려 더 안전하고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그 앱 덕분에 이번엔 좀 더 늦기 전에,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찾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내가 편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걸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우선시하게 됐다. 그 전까지는 경계를 정하는 게 ‘제한을 두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오히려 ‘나 자신을 보호하고, 상대에게도 진실을 주는 방식’이란 걸 알게 됐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그 파트너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었다. 그날은 별일 없었지만, 처음부터 ‘오늘은 뭐 해볼까’라며 웃으며 물어보는 게 아니라, “지난번 얘기했던 거, 오늘은 어때? 괜찮아?”라고 묻는 거였다. 그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 사람이 단순히 나를 조건부로 받아들인 게 아니라, 내가 정한 선을 존중해주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야. 그 순간, 내가 이 사람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게 정말 다행이다’는 감정이 더 컸다.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내가 느꼈던 공허함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 몰라지는 것’에서 비롯된 거였다는 걸 알게 됐다. 플레이 중엔 내가 ‘예쁘게 다뤄지고 싶다’, ‘압도받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건 모두 ‘나는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상상이었고, 실제로는 ‘나는 그렇게 당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현실을 무시한 채, 상대의 기대에 맞추려는 모습이었던 거야. 그래서 결국 나는 자신감을 잃고, 플레이 자체도 즐기지 못하게 됐다.
이제는 그런 일은 안 된다는 걸 스스로 다짐한다. 경계를 정한다는 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니까. 아무리 깊은 감정이 생긴다 해도, 그 감정이 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게 만들면 의미가 없다. 내가 어떤 리밋을 가지는지, 그게 왜 중요한지, 그리고 그걸 이야기하는 게 왜 용기 있는 행동인지 — 그걸 알게 된 건 정말 값진 교훈이었다.
그리고 요즘은 매번 만나기 전에, 적어도 30분은 그 경계를 다시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예를 들어, ‘접촉은 좋아하지만 손톱으로 긁는 건 불편해’, ‘목줄은 괜찮지만 벗길 때는 무조건 말을 먼저 해줘’, 이런 식으로. 너무 세밀해서 뭔가 이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게 바로 내가 ‘나다움’을 지키는 방법이니까.
그리고 최근에 발견한 ‘SM톡’이라는 앱에서는, 사람들이 리밋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게 특징이더라. 별도의 프로필에 ‘이건 절대 안 됨’, ‘이건 가능하지만 사전 협의 필요’ 같은 항목을 넣는 구조라서, 처음부터 내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체크할 수 있었다. 오픈채팅보다 정보가 더 구체적이고, 대화도 좀 더 진지하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찾는 데 시간도 줄어들고, 마음도 훨씬 여유로워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실패는 결국 ‘나를 잘 표현하지 못했다’는 실수였고, 그 결과로 얻은 배움은 결코 소모되지 않는다. 경계를 정하는 건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내가 누군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이해하는 과정이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이건 내 리밋이야’라는 말이, 자꾸만 덜컥 거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마법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