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 침묵이 내게 말하는 진짜 멈춤의 신호였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늘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아니, 이건 좀 무리다'라고 먼저 말하려고 한다. 특히 플레이할 때는 더 그렇다. 내가 원하는 건 단순히 몸이 아프거나 격렬한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뭔가를 확인하고 싶은 거니까. 그래서 세이프워드를 정할 때마다 내 마음은 한참 앞서가면서, “내가 진짜로 그걸 넘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처음엔 그냥 ‘알람 울리면 끝’이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허투루 받아들였던 게 다였다. 헤어스타일 하나 바꾸기도 망설이는 사람이었는데, 웃긴 건 바로 그런 내가 뭐가 되는지 몰라서 시작했단 점이다. 처음 만난 파트너와의 플레이에서, 그녀가 제안한 세이프워드는 ‘10초 침묵’이었다. 대화 중에 갑자기 10초 이상 아무 말 없이 있으면, 그건 그만이라는 신호라는 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더라. "진짜 이렇게 쉬운 거냐?" 하고 말했는데,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는 지금까지 얼마나 자주 10초 동안 말을 안 했어? 그게 사실은 네가 이미 멈추고 싶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잖아."

그 말을 듣고, 내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어쩌면 난 오랫동안 ‘내가 참는 게 잘하는 거야’라고 착각했던 건 아닐까. 그녀는 아주 조용하게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네가 말을 못 할 정도로 힘들어지면, 그때부터는 너의 몸이 이미 말하고 있어. 우리가 논리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네가 이미 멈추고 싶은 걸 알려주는 건, 네가 그걸 믿을 수 있게 해주는 거야.” 그 말을 들으며, 손끝이 살짝 떨렸다. 어릴 적부터 나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무언가 고통스럽다고 느껴져도, 그냥 ‘괜찮아’라고 말해왔고, 그게 성장했다는 증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 ‘괜찮아’라는 말 자체가, 오히려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이후로 나는 세이프워드를 정할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만들었다. 처음엔 ‘빨간색’, ‘파란색’ 같은 색깔을 쓰기도 했고, 어느 날은 ‘모래시계가 뒤집힐 때까지’라는 형식도 시도해봤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침내 내가 직접 세이프워드를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파트너와 함께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한테 맞는 거를 네가 직접 만들어봐.” 그러면서도 조용히 덧붙였다. “왜냐하면, 네가 그걸 외치는 순간, 그게 진짜임을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내가 정한 세이프워드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간단한데, 왜 그렇게 강하게 다가왔는지 몰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행동은 단순하다. 하지만 동시에, 내 몸이 ‘이제 못해’라고 말하는 유일한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손인데, 그저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내 삶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보호하는 행위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막상 실제 플레이에서 그 세이프워드를 써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정말 힘들어졌을 때, 그녀가 ‘혹시 오른손 올려?’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조용해서, “아, 아직은 괜찮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하지만 실제로 오른손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게 다였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무심코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그녀는 잠깐 멈췄다. 그리고 조용히 손을 잡아줬다. “아, 네가 이렇게까지 했구나. 잘했어.” 그 말을 들으며, 눈물이 났다. 그녀가 나를 보는 눈빛이, ‘너를 지켜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내가 참는 게 잘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참는 건,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요즘은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사람들이 어디선가 들은 정보를 기반으로 ‘이게 최고의 세이프워드야’라며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의 경험을 존중하면서도, 내 경험과는 다른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누구나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그걸 방해하는 건, 정답을 찾으려는 압박이 아니라, 그 자체를 인정하는 태도다.

최근엔 오픈채팅에서 여러 사람의 경험담을 읽다가, ‘사실 세이프워드는 말로 정하는 게 아니라, 실천하는 순간부터 의미가 생긴다’는 글을 본 적 있다. 그게 내 마음에 딱 와닿았다. 그래서 최근엔 좀 더 신중하게 관계를 맺고 싶어졌고, 그런 만남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곳을 찾아봤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한 게, ‘SM톡’이라는 앱이었다. 거기서는 단순히 매칭이 아니라, 플레이 전후에 세이프워드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공간도 있었고, 실시간으로 서로의 상태를 공유할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오픈채팅보다 훨씬 체계적이면서도, 너무 굳어지지 않은 분위기라서 편했다. 파트너를 만날 때마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이프워드를 생각하는지 들어보는 게 이제는 자연스러운 습관이 됐다. 내 경험은 내 것이고, 그 경험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나누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그 앱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