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걸까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누군가와 만나는 거라서 그런지, 그 전부터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무리 루틴처럼 쓰던 말투나 행동도 다 이상하게 느껴졌고, 오프모임에 가기 직전엔 몸이 안 달아붙는 게 아니었다. 내게는 이게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나를 보여주는 순간’이었으니까.

그 사람은 내가 오랜만에 했던 오프모임에서 처음 본 사람이었는데, 별다른 특징은 없었지만 눈빛이 뭔가 날 믿을 수 있다는 느낌을 줬다. 웃을 때 입술이 살짝 올라가는 게 너무 자연스럽고, 말할 때 눈을 마주치는 걸 피하지 않더라. 그게 왜 중요한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오랫동안 ‘누군가 나를 보고 있음을 인식하면서도, 그걸 숨기려고만 했던’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그녀는 내가 ‘숨기려는 것’을 아예 안 보는 듯했고, 오히려 그게 더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혹시 내가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걸까?” 싶은 의심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엔 그냥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대화를 시작했는데, 이야기는 점점 성향 얘기로 흘러갔다. 내가 조금씩 속마음을 드러내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게 아니라, ‘그럼 넌 이런 건 어때?’라며 반응을 주는 게 달랐다. 어떤 상황에선 내가 미리 준비한 문구를 쓰려다가도, 그녀의 반응이 너무 예민해서 막혀버렸다. 내가 말하려던 게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기분이 들어서, 결국 “나 좀 이상하잖아”라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웃으면서 “아니, 너 진짜 딱 내 스타일이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무언가 빛이 스며든 것 같았다.

사실 그녀가 먼저 내 과거 경험을 묻지 않았다는 게 큰 차이였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당신은 얼마나 강한가’, ‘뭐까지 해봤어?’ 같은 질문을 먼저 던진다. 하지만 그녀는 ‘너는 어떻게 편안함을 찾았어?’ 같은 질문을 먼저 해왔다. 그래서 내가 ‘이런 식으로는 긴장돼’라며 허탈하게 말했을 때, 그녀는 “그럼 내가 먼저 편안함을 만들어줄게”라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건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나를 믿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였던 것 같다.

그 다음엔 함께 요가수업을 다녀오자고 했고, 그날은 우리가 서로를 ‘무엇인지’보다 ‘어떻게 느끼는지’에 초점을 맞춘 첫 실험이었다. 운동 중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호흡을 맞췄고, 퇴근 후에는 갑자기 떠오른 감정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요즘 계속 걱정돼. 내가 실망시키진 않을까.” 그녀는 나를 보며 “넌 이미 나한테는 충분히 보여줬잖아”라고 말했다. 그 순간, 이 사람이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나쁜 것’이라고 보지 않고, ‘내가 겪은 것’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점점 더 쉽게 말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면, 그녀는 그걸 거부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그거 좋아해? 그럼 나도 한번 해볼래’라며 함께 도전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것이 바로 신뢰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내게 ‘완전히 열려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네가 준비됐을 때, 네가 말하고 싶을 때’를 기다려준다는 게 가장 큰 위로였다.

요즘은 그녀와 매주 적어도 한 번은 온라인에서 채팅을 나누는데, 특히 ‘SM톡’이라는 앱을 써보면서 진짜 좋은 점 하나는,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을 지속하기 위한 ‘편안한 공간’이 생겼다는 거다. 오픈채팅 같은 곳에서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눈치만 보이고, 무작위 소통에 집중하다 보면 본질적인 대화가 사라지기 마련인데, 여기선 그저 ‘우리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의 톤, 리듬, 감정의 깊이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있다’는 느낌이 생겼고, 그게 나에게는 정말 큰 성취였다.

처음엔 단순히 ‘내가 원하는 파트너’를 찾는 거였지만, 지금은 그녀가 나의 ‘비밀스러운 감정’을 허락받아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만큼 설렘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 가깝다.

지금은 그녀와 만난 지 5개월쯤 됐고, 아직도 매번 만날 때마다 손끝이 떨린다. 하지만 그건 이제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이 사람과 다시 만나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느끼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