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좀 이상한 하루였던 거 같아. 평소에 내가 꽤 확고하게 돔 쪽으로 움직이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약간의 실험처럼 섭 역할을 해봤어. 그게 왜 이상했냐면, 내 성향이 다를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뒤집히는 게 너무 자연스럽더라고. 마치 자기 자신을 보는 거울 같은 느낌이었어.
그건 지난주에 만난 파트너와의 얘기였어. 처음엔 그냥 정모에서 만나서 대화 나누다 보니, 의외로 잘 맞는 듯해. 말투도, 감정 표현 방식도, 어색함 없이 흘러가는 게 마음에 들었고. 그 친구가 “요즘은 그냥 섭으로만 하기 싫어서, 가끔은 돔이 되는 거 도전해보고 싶어”라며 말했을 때, 난 조금 당황했지. 그만큼 내 상상력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상태였거든. ‘내가 돔이 될 수 있다’는 건, 사실 지금까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어.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어쩌면 이거, 해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 그냥 농담처럼 넘기기엔 진지한 눈빛이었고, 분위기도 흐름이 있어서. 그래서 한 번 해보자는 걸 제안했고, 그 친구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그렇게 시작됐어.
처음엔 무척 불편했어. 아니, 오히려 더 힘들었다고 해야 할까. 내가 원래 힘을 주고, 지시하고, 결정하는 쪽인데, 이제는 그 역할을 맡지 않아야 하는 거야. 대신 체크리스트를 세우고, 질문을 던지고, 그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해야 해. 그게 얼마나 조심스럽고, 허공을 걷는 기분이었는지 몰라. 내가 아무리 관계를 조율하려 해도, 그 친구가 뭘 원하는지, 어떤 부분이 아프거나 불편한지, 늘 숨겨진 것 같았어. 그래서 결국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계속 스스로를 의심하게 됐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다른 감각이 생겼어. 내가 기대했던 ‘통제감’이 아니라, 오히려 ‘관찰자’라는 느낌이 강해졌어. 그 친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떤 말을 할 때 미묘한 감정이 드러나는지, 어떤 순간에 고개를 돌리거나 손끝을 움켜쥐는지… 다 보였어. 그리고 그게 또 너무 흥미로웠어. 내가 지금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신호들이, 모두 내게 중요한 정보였다는 걸 깨달았어.
결국 끝날 무렵에는, 내가 누군가의 선택을 지켜보는 게 이렇게 설레는 일인지 몰랐어. 내가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그 사람의 몸짓 하나에도 의미가 있고, 그걸 읽는 게 재미있었어. 그리고 그 친구도 나에게 “너 진짜 섭이 되면 섬세하네”라고 말했었는데,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진짜 바뀐 게 있다는 걸 느꼈어.
아, 그리고 요즘 쓰고 있는 채팅 앱 이야기 좀 할까. 최근에 옛날에 자주 사용하던 오픈채팅보다 좀 더 조용하고,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기 쉬운 앱을 찾다가, ‘SM톡’이라는 곳에 들어가봤어. 알고 보니, 단순한 메시지 교환을 넘어, 플레이 준비 단계부터 후속 대화까지 다 함께 소통할 수 있게 되어 있어. 특히 사전 커뮤니케이션에서 ‘역할 설정’이나 ‘경계선’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우리가 이번에 섭과 돔을 바꿔보는 경험도, 그 전에 충분히 논의하고 시작할 수 있었지. 오픈채팅처럼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서로의 의도를 명확히 이해하면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어.
솔직히, 처음엔 ‘저런 걸 왜 해?’ 싶었지만, 해보니까 내 성향이 훨씬 넓어지는 기분이 들어. 물론 여전히 돔 쪽이 내 기본적인 성향은 맞지만, 이제는 “무조건” 돔이 아니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됐어. 오히려 그런 유연함이, 관계를 더 깊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 내가 지금까지 ‘내가 무언가를 통제해야만 만족한다’고 믿었던 건, 사실 내 두려움일지도 몰라. 그걸 견디는 법을 배우는 중이야.
이번 경험은 내게 많은 것을 남겼어.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 입장이 되는 것도, 나에게는 새로운 시선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줬으니까.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해준 건, 단순한 연애나 플레이가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고, 공감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힘이었어. 요즘엔 그 ‘SM톡’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정말 실질적 도움이 되고 있어.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섭 역할을 해봤어. 처음엔 너무 긴장돼서, 오히려 내가 정작 마음이 흐트러졌던 게 기억나. 그 친구가 “너 지금 좀 이상해”라며 웃었을 때, 나도 어색하게 웃긴 건 진짜 내 본능이었다. ‘내가 이렇게 다정한 말을 할 수 있단 걸 어떻게 아냐’ 싶었거든. 보통은 내가 ‘이제 시작해’라고 말하는 쪽인데, 이제는 “괜찮아, 네가 준비됐을 때 괜찮아”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근데 그게 점점 익숙해지더라고. 특히 한 번은, 그 친구가 정말 무언가를 잘 못 해서 힘들어하던 순간, 나는 그저 “괜찮아, 그냥 느껴보면 돼”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이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느꼈다. 그때 내가 뭔가 이전과 다른 감각을 느꼈어. 내가 지시하는 게 아니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되는 거야. 마치 내가 강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불안을 덜어줄 수 있다는 느낌. 그래서 내가 원래 돔이었던 이유 중 하나가, ‘내가 누군가를 안심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욕구였을지도 몰라. 그것이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진짜로 누군가를 돌보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
그리고 요즘은 그 ‘SM톡’에서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있어. 그 앱에선 단순히 만남을 조율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 후 감정 상태를 공유하는 공간도 있어. 최근엔 그 친구랑 ‘역할 전환’ 경험을 얘기하면서, 내가 그때 느꼈던 ‘자신감의 부족’을 솔직히 말했어. “처음엔 내가 너무 조건부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실수하면 너가 기분 상할까 봐, 미안하다고 계속 말하고 싶었거든.” 그랬더니 그 친구가 “넌 내가 막힐 때마다 조용히 옆에 있어줬잖아. 그게 가장 큰 도움이었어”라고 말했어.
그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알았어. 내가 섭이 되면서 느꼈던 ‘무력감’은 사실, 내 자신에게 대한 방어였다는 걸. 내가 무엇을 해야만 의미가 있을까, 늘 그런 기대를 스스로에 걸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그걸 없애려고 하다 보니, 오히려 내가 어떤 역할이든, 그 자리에 맞춰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배웠어. 그러니까 지금은 섭이든 돔이든,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 그게 진짜 중요한 거라는 걸 알아.
요즘엔 자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 가는지, 어떤 말이 서로의 마음을 훑어가는지 생각하게 돼. 그게 매번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내 안의 것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해. 언젠가 내가 또 한번 역할을 바꿔보는 날이 올지도 몰라. 그때도, 그 친구와 같은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 “넌 나를 안심시키는 걸 잘해.” 그게 나에게는 이미 최고의 평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