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내가 무언가를 힘들게 느꼈다. 그건 단순한 불안이나 스트레스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어떤 감정이 뭔지 모른 채 나를 뒤흔드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거였을지도 몰랐다. 처음으로 그걸 인식한 건, 집에서 혼자 있을 때였다. 방음이 잘 되는 작은 방에서 옷을 벗고 천천히 목욕을 하고 있는데, 창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줄기가 팔뚝을 타고 흐르는 게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었는데, 순간 멈춰서 그 감각을 잠시 느껴봤다. 그리고 그때 문득 생각났다. 이거… 내가 원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그 생각은 곧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라는 반박과 함께 사라졌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것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정직하게 살고 싶었고, 남들과 같은 기준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성적 취향도, 관계의 형태도, 모두 ‘보통’이어야 했다. 그래서 항상 ‘내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려는 노력을 했다’. 예전에는 친구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너 진짜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네”라고 하면 기분 좋았고, 오히려 ‘내가 더 외향적이거나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이상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이상의 자기부정이 괴로워졌다. 특히 밤에 혼자 있을 때마다, 내가 참아왔던 감정들이 마치 소리 없이 울리는 듯했다. 가끔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다루는 행동이 생겼다. 손끝으로 팔뚝을 살짝 긁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됐다. 그건 단순한 자위가 아니었다. 어떤 ‘무엇인가’를 얻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계속 두려웠다. 그래서 결국 도망쳤다. 그 감정을 무시하고, 그럴 수 없다는 걸 스스로에게 다시 말했다.
그러다 최근에, 우연히 ‘SM톡’이라는 앱을 알게 됐다. 원래는 오픈채팅에서 정보를 얻으려고 들어갔다가, 막상 들어오자마자 별다른 흥미 없이 그냥 나왔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몇 달 뒤, 다시 들어가봤더니 사람들이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단순한 성적인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경험이나 마음의 상태, 고민까지 털어놓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한 사람의 글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 사람이 쓴 말은 이렇게 시작됐다.
> "나도 오랫동안 ‘나는 이런 취향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은 좀 다르게 느껴져요. 내가 진짜 힘들었던 시절, 누군가가 나를 통제해줘야만 평온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게 뭐든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내가 그 상황에서 안전하고, 선택한 거라는 거죠."
그 글을 읽고, 내 마음이 갑자기 후벼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안에 있던 거대한 진실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내가 무시했던 건, 단지 ‘취향’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늘 ‘당신이 원하는 걸 해도 괜찮아’라며 남에게 말하곤 했지만, 제 자신에게는 그 말조차 못했다. 그 모든 것을 ‘좋아하는 건 나랑 안 맞아’라며 차단해왔다.
그 이후로, 나는 적당히 열린 마음으로 조금씩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단순히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 정도로만 받아들였지만, 점점 더 그 세계에 대해 궁금해졌다. 안전한 환경, 합의, 경계선, 사전 대화 — 그 모든 것이 내가 원했던 ‘내가 주도하는 것’이었다. 내가 위험을 느끼지 않도록, 내가 원하는 대로 제어할 수 있는 플레이. 그게 내가 원하던 건 아니었을까.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라고 말하기보다, ‘나는 이걸 선택했고, 이 선택이 나를 구원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을 수도 있고, 때로는 ‘내가 이거를 좋아한다는 게 현실일 수가 없다’는 회의감이 온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는다. 그 감정을 말로 풀어내는 게, 내가 스스로를 인정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저항이자 치유다.
앞으로도 아마 계속 배우고, 실험하고, 실수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을 찾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그저, 내가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게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