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도구로 만든 첫 물건, 책장

어느 날 밤, 자취방에서 허공을 바라보며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냥 '일상'처럼 쓰던 물건들을, 진짜로 플레이 도구로 써본 적이 없었다는 걸.

내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도구를 고르기 시작한 건, 상대방과의 관계가 조금씩 깊어지면서부터였다. 그전까진 그냥 코일이나 체인 같은 거, 뭔가 '식스팩' 같다고 생각해서 사서 썼던 것들. 그런데 그게 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좀 이상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때까지 내가 썼던 건, 다 마치 ‘사용할 만한 물건’이었지, 나만의 ‘의미’가 담긴 게 아니었거든.

그러다가 한 번은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 기억에 남았다. "나는 뭐든 다 쓸 수 있어. 다만, 그게 내 안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해." 그 말이 왜 이렇게 가슴을 찔렀는지 몰랐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바로 온라인에 들어가 검색을 시작했다. 막연하게 ‘예쁜 체인’, ‘무거운 리드줄’, ‘소프트한 페터닝 장갑’ 같은 단어들만 골라서 보다 못하다가, 결국은 마음이 정착한 건 오래된 책장 하나였다.

그 책장은 내가 대학 시절에 써서 버린 약간 벗겨진 책들로 가득 차 있었고, 문고리도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걸 손질하려면 꽤 오래 걸릴 거란 걸 알았지만, 그걸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이 책장을 다시 다듬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이건 나만의 도구야’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비슷한 재질의 천을 붙이고, 문고리를 새것처럼 다듬고, 안쪽에는 부드러운 실리콘 패드를 넣어서 무게감을 조절했다. 완성된 순간, 그 책장은 이제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들어낸 ‘플레이 공간’이 되었다.

그 후로는 다른 도구들도 점점 더 내 감각에 맞춰져갔다. 예를 들어, 처음엔 ‘코일’이라는 게 어찌 보면 아주 기계적인 이미지였는데, 내가 만든 건 그걸 끼워넣은 러버 스틱이었고, 그 끝부분에는 작은 미니 핀이 달려 있어서 터치할 때마다 살짝 깨달음 같은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의 반응을 유도하는 요소’가 되도록 바꾸어 나갔다.

특히 중요한 건,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어떤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흠집이나 불규칙한 부분들이 오히려 매력이었다. 한 번은 그 책장을 사용하면서, 문고리가 살짝 삐뚤어졌는데, 그게 오히려 훨씬 더 강한 제약감을 줬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순간이 오히려 더 깊은 몰입을 가져다줬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방식으로 도구를 만드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익숙해졌다. 그래서 더 이상 ‘구매’보다는 ‘제작’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써본 건, 주로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는 내 몸을 위한 ‘체중 조절용 체인’이었는데, 이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가볍고 긴 체인을 사용했는데, 그걸 팔목에 두르고 엄지손가락만으로 움직이면, 몸 전체가 저항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마치 스스로를 억누르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게 또 내 마음속에서 ‘자기 통제’라는 개념과 연결됐다. 아마도 그게 내가 평소에 너무 많이 외부로부터 규율을 받는 탓이겠지만, 이 체인이 내게는 ‘나만의 명령’이 되어준 거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도구를 준비하고, 써보고, 다시 수정하고… 이 모든 과정이 어느새 나에게는 일상이 되었다. 물론 초기엔 뭔가 ‘잘못했나’ 싶은 불안감도 있었고, 누군가의 눈길을 의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나만의 공간’이니까, 그저 내가 느끼는 대로 만들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사실, 요즘은 오픈채팅 같은 걸로 파트너를 만드는 게 은근히 지쳐서, 좀 더 자신감 있게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최근에 새로 생긴 앱, ‘SM톡’을 한번 써봤다. 그 전엔 오픈채팅에서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다들 너무 빨리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었고, 내가 원하는 그런 ‘디테일한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SM톡’에서는 채팅 방이 개별적으로 운영되면서, 서로의 취향이나 도구에 대한 경험을 훨씬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었고, 나도 그 중 하나로 ‘내 책장 이야기’를 올려봤다. 그게 나에게는 처음으로, 내 마음속에 있던 것들을 ‘내가 만든 것’이라는 이유로, 사람들과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내가 지금까지 고르고, 만들고, 써온 모든 도구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의 감정과 경험, 그리고 나만의 언어였다.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