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또다시 플레이 끝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머릿속을 맴도는 게 있었어. 바로 세이프워드 이야기였지. 사실 이건 처음부터 명확했던 게 아니었어. 완전히 바닐라였던 시절엔 ‘아무리 힘들어도 괜찮아’ 같은 식으로 그냥 몸이 감당하는 대로 해왔거든. 근데 한 번 주인님과 첫 플레이를 하면서 그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알았어. 그때는 내가 제일 낮은 수준의 허락만 받았는데, 결국 뒤늦게 과잉 반응을 보인 거야. 눈물 나고 숨 쉬기도 힘들고, 정신이 멍해졌어. 그 후로는 진짜 세이프워드가 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내 마음 속에서 떨쳐내질 못했어.
그런데 문제는… ‘멈춰’라는 말을 정말로 쓰는 게 무서웠다는 거야. 내가 원하는 걸 더 이상 못하게 되는 건 아냐, 그런데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분위기가 깨진다는 느낌이 들어. 그래서 고민 끝에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 이런 식으로 색깔로 정했어. 예전에 누군가 올린 글에서 본 거였는데, 실제로 써보니까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가벼워졌어. 단순한 문자보다는 감정이 좀 더 담겼다고 느껴졌거든. 초록색은 ‘더해도 괜찮아’, 파란색은 ‘조금만 조절해줘’, 빨간색은 ‘멈춰, 지금은 안돼’. 이렇게 정하고 나니까, 주인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더라. 처음엔 너무 부담스러워서 다들 그냥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는데, 나중엔 나도 점점 솔직해졌고, 그게 오히려 관계를 더 깊게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됐어.
실제로 써본 적은 두 번 정도야. 첫 번째는 복잡한 플레이 중이었는데, 패드로 페트팅을 하다가 땀이 났고, 피부가 따끔거려서 파란색을 말했어. 주인님은 즉각 손을 멈추고 “괜찮아?”라고 물었고, 그런 순간이 참 따뜻했어. 두 번째는 더 강한 부분이었는데, 약간의 구속이 있었고, 내가 기분 좋으면서도 조금씩 통제력을 잃어가는 상황이었어. 그때 빨간색을 말할 수 있었던 건, 그게 나에게도 일종의 권력이라고 느꼈거든.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 평소엔 늘 다른 사람의 기분에 맞춰서 움직였는데, 그 순간에는 내가 먼저 말할 권리가 있었다는 게 어찌나 안도되는지.
그리고 요즘, SM톡이라는 앱을 통해 새로운 파트너를 만났어. 오픈채팅에서 우연히 접한 거였는데, 처음엔 그냥 지나가려 했지만, 그 친구가 세이프워드를 어떻게 정했는지 써놓은 게 눈에 들어왔어. 자기는 ‘안녕’이라는 단어를 세이프워드로 쓴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그게 가장 자연스럽고, 오해 없이 전달된다고 했거든. 그걸 보고 갑자기 ‘내가 썼던 색깔도 괜찮은 방법이었구나’ 싶었어. 그 친구랑은 아직 직접 만나진 않았지만, 채팅에서 몇 번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로의 경계선을 존중하려는 태도가 비슷했어. 세이프워드 이야기를 할 때도, 너무 무겁게 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잖아. 그게 참 좋은 거야. 마치 내가 겪었던, 처음엔 무서웠던 그 감정이 이제는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는 느낌.

지금은 여전히 세이프워드를 정할 때마다 긴장은 돼. 어떤 상황이든, 내 몸과 마음이 뒤늦게 ‘정말 괜찮아?’ 하고 질문할 수 있도록, 나는 계속 그 문장을 새겨넣고 있어.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처럼, 혹은 ‘안녕’처럼. 중요한 건 그것이 단순한 코드가 아니라, 내가 자신을 돌보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야. 아무리 흥분되어도, 그 순간이 내가 선택한 방향이어야 한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그 말을 내뱉는 게 두렵지 않아. 오히려,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자유로운 순간이 된 것 같아.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세이프워드를 단순한 ‘플레이 중단 키’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처럼 느끼기 시작했어. 처음엔 빨간색을 말할 때마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지. ‘나, 지금까지 다 깨졌잖아’ 싶었거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은 사라졌어. 오히려 그 순간에 나 자신을 돌보는 것, 그게 얼마나 강력한 자기주장인지 알게 됐어. 예를 들어, 한 번은 주인님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식으로 몸을 움직여줬는데, 그게 너무 잘 맞아서 정신이 멍해질 뻔했어. 그런데 그 순간, 자동으로 손이 빨간색을 눌렀어. 그건 단지 ‘멈춰야 해’라는 판단이 아니라, ‘지금 이 느낌을 내 안에 좀 더 오래 머물게 하고 싶어’라는 욕망이었어. 그걸 의식적으로 선택했다는 게, 절대적 자유였다는 걸 느꼈어.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 이후로 주인님도 내 감정을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거야. 예전에는 나의 반응이 너무 빠르거나 급하게 나오면 “조금만 더 해봐”라고 압박했지만, 이제는 내 말을 끝까지 기다렸어. 나의 세이프워드를 들으면 그냥 조용히 멈추고, “괜찮아?”라고 물었을 뿐인데, 그 말이 왜 그렇게 따뜻하게 느껴졌는지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였어. 마치 내가 무너져도 괜찮다고 보장받는 것 같았거든. 그게 진짜로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요즘, SM톡에서 만난 친구와의 대화가 다시 생각나. 그 친구는 처음부터 “세이프워드는 내가 원하는 순간에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어. 그런데 그게 단순한 원칙이 아니라, ‘나는 너를 믿는다’는 표현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 조금씩 마음이 열렸어. 우리 사이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의 경계선을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생겼고, 그래서 오히려 더 리스크 있는 플레이를 시도해보는 게 가능해졌어. 그런데 그게 놀라운 건, 그때마다 나는 더 많이 감정을 표현했고, 더 많은 것을 허락할 수 있었던 거야. 세이프워드를 썼다는 사실이 오히려 내게 ‘이게 나의 선택이야’라는 확신을 줬기 때문이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세이프워드는 단지 위험을 피하는 도구가 아니라, 실제로는 경험의 깊이를 결정짓는 핵심이었어. 내가 무조건적인 통제를 받는 것보다, 스스로를 돌보는 능력을 갖고 있을 때, 진짜로 ‘내 몸을 맡긴다’는 느낌이 생겼거든. 전에는 ‘더하고 싶은데 못 하니까 아쉬웠다’는 생각이 컸는데,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이 더 크지.
그리고 가끔은, 과거의 내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걸 말하지 않았다’고 후회하는 순간이 있긴 해. 그땐 단지 ‘이상적인 플레이’를 추구하다 보니, 실질적인 내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이 생겼어. 지금은 그게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겠어. 단지 ‘좋아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건 너무 세다’, ‘이건 좀 다르게 해줘’, 이런 말들을 하는 게, 결국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는 걸.

실제로, 올해 초엔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세이프워드 이야기를 나눴어. 그 사람이 처음엔 ‘왜 굳이 그런 걸 고민해?’라고 했지만, 내가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설명하자, 그는 잠시 말없이 있었다가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라고 말했어.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그저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감정을 읽는 법을 배우는 듯한 시간을 가졌어.
모든 게 다 완벽하진 않아. 여전히 때로는 ‘지금 말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세이프워드를 쓰는 게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해. 하지만 그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야. 아무도 완벽하지 않으니까. 중요한 건, 그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그냥 인정하고, 그대로 말할 수 있다는 거지.
이제는 세이프워드가 내 삶의 일부가 됐어. 아니, 오히려 그것이 없었으면 나의 플레이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내가 허락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고, 그 안에서 얼마나 깊이 빠져들 수 있는지, 그 모든 걸 결정하는 건 내 선택이라는 걸, 이제는 진심으로 믿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