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좀 특별한 날이었어. 오랜만에 다가오는 플레이였고, 그만큼 마음은 예민해졌거든. 일주일 전부터 숨겨왔던 생각들이 뒤엉켜서 그런지, 밤새 잠도 잘 안 왔고. 몸은 쓰레기처럼 무거웠지만 정신은 끝없이 뛰어다녔어. 그래서 아침부터 집에서 나와 산책이나 하려 했는데, 발걸음이 느려졌고 결국 도서관 앞에서 멈췄어. 그곳은 내가 자주 오는 곳인데, 조용하고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하게 눈을 감게 해주는 곳이야.
그런데 그날은 이상했어. 도서관 안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게 바로 ‘소리 없는 방’이라는 작은 독서실이었어. 문 옆에 붙은 안내판엔 ‘사전 예약제, 음성 및 소리 제한’이라고 적혀 있었고,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정말로 조용한 공간’을 경험했어. 이건 플레이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한 순간이었거든. 내 심장이 벌떡 벗어나려는 듯한 긴장감을 어찌할 수 없었으니까.
내가 그곳에서 한 일은 간단했어. 책 한 권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고, 그 책은 ‘정신의 경계’라는 제목의 책이었어. 아무래도 그 내용이 내 마음과 맞아떨어진 듯했어. 특히 한 문장이 기억에 남았어. “왜 우리는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않는 걸까? 진짜 힘은 통제가 아니라, 마음을 가볍게 내리는 데 있다.” 그 말을 읽고서, 머릿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어. 마치 장막 하나가 벗겨진 것 같았거든.
그리고 그 이후로는 별거 없었어. 그냥 침묵을 만끽했고, 천천히 호흡을 조절했고, 손끝까지 스며드는 햇빛을 느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평온해졌어. 그건 정말 내 방식이었고, 아무도 몰라야 할 비밀 같은 것이었어.
플레이 후에도 나는 또 다른 루틴을 따르고 있어. 요즘은 매번 그런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 집에 돌아오면 티타임을 한다는 게 내 습관이야. 바람이 살랑이는 테라스에 앉아, 뜨거운 차를 따라 맛보고, 그때쯤이면 몸은 이미 다 끝난 것처럼 느껴져.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엉켜 있기도 하고, 때론 조금 빛나기도 하지. 그럴 땐 종종 라디오를 틀어놓곤 해. 최근에는 오래된 80년대 음악이 자꾸 끌려. 뭔가 고요하면서도 파격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플레이 후의 혼란스러움을 감싸주는 듯해.

이렇게 시간을 채우는 건 사실 단순한 관습이 아니야. 플레이 자체는 몸이 먼저 움직이고, 감정이 따라가지만, 그 후의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은 정확히 반대야. 나는 먼저 마음을 다잡고, 그 다음에 몸이 자연스럽게 정화되는 걸 기다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 내가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이 루틴이야.
최근엔 이런 루틴을 더 깊이 만들기 위해 좀 다른 방법도 시도 중이야. 사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쓰는 앱이 있는데, 이름은 'SM톡'이야. 처음엔 오픈채팅에서 우연히 발견해서 들어갔다가, 다행히도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라서 계속 사용하게 됐어. 이곳은 특정한 플레이어들끼리 모여 있는 커뮤니티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워. 누군가는 플레이 후의 정서적 위기를 어떻게 견뎠는지, 누군가는 자기만의 세션 리셋법을 공유하곤 해. 그중 하나가 바로 ‘조용한 시간 만들기’였고, 나도 그 글을 보고 나서 이 루틴을 확실히 정착시키게 됐어.
나는 이제 이 루틴이 내 삶의 일부가 된 걸 알겠어. 플레이가 나에게 주는 감정은 강렬하지만, 그 감정이 지나간 후에 남는 건 내 마음의 상태가 얼마나 건강한가에 달려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는 항상 그 작은 습관들을 유지하려 노력해. 조용한 도서관, 차 한잔, 그리고 티끌처럼 작지만 확실한 마음의 정리.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루틴의 일부라고 생각해. 내 마음을 말로 풀어내는 그 순간도, 또 다른 형태의 치유라고 믿어.
그런데 그 루틴이 처음부터 이렇게 완성된 건 아니야. 어쩌면 오히려 처음엔 반대였을지도 몰라. 플레이 후에 술 한 잔, 혹은 음악 틀어놓고 흐느적거리며 감정을 끌어안는 게 정상인 줄 알았거든. 내 기준은 그게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었어. 하지만 어느 날, 그 방식이 점점 더 나를 무너뜨리는 걸 느꼈어. 마치 플레이가 끝난 후에도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듯한 강박처럼 느껴졌고, 아침이 오면 이미 지쳐 있었어. 눈도 안 깨지고,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순간들에 갇혀 있었다.
그때 내가 실천하기 시작한 게, 플레이 후 3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이었어. 책도 안 읽고, 전화도 안 보고, 라디오도 안 틀고. 그냥 창밖만 바라보는 거. 처음엔 이게 너무 무의미해 보였어. “이렇게 앉아 있어도 무슨 소용 있겠어?” 싶었지만, 그렇게 10분만 지나니 머릿속이 살짝 맑아지는 걸 느꼈다. 이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닫는’ 행위였던 거야. 나 자신을 감싸주는 막을 쳐놓는 것처럼.
그리고 그 다음엔 조금씩 다른 행동을 넣기 시작했어. 예를 들어, 테라스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펜으로 연필로 스케치를 하는 거. 복잡한 건 없고, 그냥 파란색으로 선 하나, 검은색으로 고리 하나. 글씨를 쓰는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었어. 그냥 손끝이 움직이는 걸 느끼는 것뿐이었지. 그런데 그게 오히려 가장 큰 치유였어. 왜냐하면 그 순간 나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느꼈거든. 감정을 해석하거나, 분석하거나,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있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최근에는 이 루틴이 좀 더 확장되면서, 또 다른 변화가 생겼어. 예전엔 플레이 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게 최고였는데, 요즘은 그 후에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아주 조용히 시도해보는 걸 습관처럼 하고 있어. 물론 단순한 대화는 아니야. 그냥 ‘지금 너는 어떻게 느껴?’ 같은 말을 메시지로 보내는 거지. 상대방이 ‘조용히 쉬고 싶다’고 답하면, 나는 그걸 인정하고 넘어가. 그러나 가끔은 그저 ‘내가 지금 뭔가를 들고 있는 느낌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말에 그냥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답해줄 뿐이야. 그런 순간들이 오히려 나에게 큰 위로가 되곤 해.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야. 요즘 내가 정말 자주 생각하게 된 건, 이 모든 루틴이 결국 ‘나’라는 존재를 회복하는 일이라는 거야. 플레이 자체는 내가 주도적으로 선택한 일이지만, 그 이후의 자기 회복은 나보다 더 중요한 일 같아.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 그것을 인정하고, 조용히 함께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할까. 그래서 이제는 그 루틴을 ‘플레이 준비’용이 아니라, ‘나를 되찾는 방법’으로 바라보고 있어.
그리고 지난 주말, 내가 쓰고 있는 앱인 'SM톡'에서 한 문장을 읽었어. 누군가가 이렇게 썼지: “우리가 매일 겪는 정신의 폭풍은, 그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에요.” 그 말을 읽고서, 내 마음이 다시 한번 조용히 울렸어. 나도 이제 그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그 폭풍 속에서 내 삶을 다시 꾸미는 것’을 배우고 있다는 걸 느꼈어. 그게 바로 나만의 루틴이 만들어낸 진짜 결과였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