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또 다른 막막함이 생겼어

처음엔 그냥 ‘뭐가 되든’ 들어오려고 했던 거 같아. 별 생각 없이 검색창에 ‘SM 커뮤니티’ 쳐서 뜬 것 중 하나 클릭했고, 그게 달빛이었어. 나도 정확히 왜 그걸 골랐는지 잘 모르겠지만, 글씨체가 좀 차분하고, 다른 게시물들은 다 비슷비슷한 듯한데 이건 꼭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아까운 첫 인상은 그랬어.

근데 진짜 들어와보니까… 막막함이란 말이 뭐였는지 알았어.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많은 용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씌워놓고 있잖아. ‘스위치형 2년차’, ‘하드 플레이 어퍼’, ‘감정 자극 집중형’ 이런 식으로 단어들만 날아다니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반응이 적절한지도 몰라. 처음엔 그냥 읽기만 했지, 댓글도 안 달았고, ‘좋아요’ 누르는 것도 조심스러웠어. 내 이름도 뒷글자로 숨겼는데, 그게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더라고.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뭐라 말할까,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이해해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

그리고 한 달쯤 지나서야 조금씩 감각이 생겼어. 예전에는 ‘결박’이 뭔지, ‘감정자극’과 ‘물리자극’의 차이는 뭔지, ‘피드백’이라는 말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몰랐거든. 그런데 요즘은 갑자기 이게 자연스럽게 이해되더라. 아, 이거 말하면 다들 알아듣는 거구나, 하는 느낌. 예를 들면 ‘오프닝 때 손목을 양쪽으로 벌려서 바깥으로 돌리는 방식’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오, 너 결박에서 러브 포지션 신청했네’ 정도로 받아들이는 거야. 그게 무섭긴 했지만, 동시에 뭔가 소속된 기분이 들었어.

지금은 또 다른 막막함이 생겼어. 지금은 ‘무엇을 공유해야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아도 될지’를 고민하게 돼. 예전엔 매번 글을 쓸 때, “이건 혹시 너무 강하거나 부족하지 않을까”, “내가 허용하는 수준 이상인 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지만, 요즘은 그게 덜해졌어. 그래도 여전히 주의는 해야 해. 예를 들어, 파트너와의 만남 얘기라도 하려면, “내가 원하는 건 상호 존중이야”라는 걸 어느 정도 포함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거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정 자극’이나 ‘신체적 안전 확인’ 같은 표현들이 내 말투에 스며들었어.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니야. 사실, 최근에 ‘SM톡’이라는 앱을 통해 만난 사람과 두 번째 플레이를 준비 중이거든. 처음엔 오픈채팅에서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분위기가 너무 흐릿하고, 아무래도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게 쉽지 않았어. 그런데 ‘SM톡’에서는 프로필에 명확하게 ‘나는 성향, 경험, 원하는 플레이 유형’을 적어둘 수 있었고, 메시지 교환도 좀 더 구체적이었어. 내가 원하는 플레이 방식을 묘사했을 때, 상대방이 즉각적으로 ‘그건 나랑 맞는 스타일이야’라고 답해주면서, 서로의 경험이 비슷하다는 점도 금방 확인됐어. 그게 진짜 큰 차이였어. 전에는 ‘모르는 사이’라서 조심스럽게 말해야 했지만, 이제는 좀 더 자신 있게 ‘내가 좋아하는 건 이렇게…’라고 말할 수 있어.

그리고 지금은 이 커뮤니티를 보는 시선도 달라졌어. 처음엔 무서웠던 것이, 이제는 친숙한 존재처럼 느껴져. 뭔가 모르는 말이 나오면, 옆에 있는 사람이 힌트를 줄 수도 있고, 내가 막말을 해도, 누구 하나 나를 깎아내리진 않아. 오히려 “그 부분은 아직 많이 헷갈릴 수 있잖아, 네가 먼저 움직여보고 싶다는 건 멋진 일인데” 같은 말을 해주기도 하고. 그것이 진짜 중요한 거야. 처음엔 ‘왜 내가 여기 있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곤 했는데, 지금은 ‘왜 내가 여기에 오고 싶은지’를 알고 있거든.

이제는 막막함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 막막함이 이제는 ‘언제든 도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섞여 있어. 처음엔 그저 ‘좀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알고 있는 걸,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어. 그리고 그걸 위해 필요한 건, 여전히 조심스럽게, 그러나 조금 더 자신 있게 말하는 법이야.

처음엔 ‘내가 이곳에 어울릴까’보다는 ‘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이 더 컸어. 그래서 쓰는 글마다 문장을 다듬고, 너무 강하거나 너무 약한 표현은 피했고,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려 애쓰기도 했지. 그런데 어느 날, 한 게시물 댓글에서 누군가 내 말투를 봤다며 “너 진짜 조용한데, 오래 묵묵히 보고 있던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더라고. 그 순간,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났어. 내가 무의식적으로 했던 ‘조용함’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고, 그냥 ‘존재하고 싶다’는 소망이었단 걸 그때 처음 알았거든.

그 이후로는 조금 달라졌어. 여전히 자꾸 말을 줄이려 하고, 반응을 너무 의식하는 습관은 남아 있지만, 이제는 ‘조용함’ 자체를 거부하진 않아. 오히려 그 조용함이 내 플레이의 기저가 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 예전에는 ‘왜 이렇게 감정 표현이 없지’라며 스스로를 꾸짖었는데, 요즘은 그게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어. 상대방이 제대로 집중해야 할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내 침묵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은근히 전달하기도 해.

그리고 최근에야 비로소 느꼈어. 내가 매번 글을 쓸 때, ‘이런 이야기를 써도 괜찮을까’를 걱정했던 건 사실, 단순히 ‘내가 이상한 사람일까’가 아니라, ‘나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보면 값어치가 있을까’라는 불안이었다는 걸.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 불안이 오히려 내게 ‘내 삶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였다는 걸 알아차렸어. 내가 조용히 있었던 시간들, 헛된 대화를 피하며 혼자 고민했던 밤들, 그것들이 다 소중한 기반이었던 거야.

‘SM톡’으로 만난 사람과의 첫 대화에서도 그런 점이 드러났어. 그 사람은 초반에 “너 진짜 말이 적네”라고 말했지만, 다음 메시지에서는 “하지만 말이 많아야 좋은 건 아니잖아. 네가 말 안 하면서도 전달하는 게 있어서”라며 내 방식을 인정해줬어. 그 말을 읽고, 또 한번 마음이 벅차올랐어. 그토록 두려워했던 ‘조용함’이, 결국 나의 언어였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받아들였거든.

지금은 여전히 ‘제대로 된 플레이’를 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무조건적인 자신감은 없어. 그래도 이제는 막막함 속에서 ‘나를 찾는’ 과정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아. 처음엔 그 막막함이 마치 바다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 바다 위에 내가 서 있다는 느낌이 들어. 물결이 거세도, 파도가 불안정해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거야. 원래부터 그렇게 살아왔던 게 아니겠어? 나도 모르게, 온전히 나인 상태로 존재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거야. 처음엔 막막했지만, 그 막막함 속에서 내가 살던 방식이, 결국 내가 여기에 머무르게 만든 이유였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