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좀 헤매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아. 아무래도 최근에 내가 원하는 방식의 관계를 찾기 위해선 더 명확한 자기표현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거든. 평소엔 대체로 조용히, 그저 주변을 살피는 성향인데, 그런 내게 ‘나’를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특히 플레이에 관련된 부분에서 말이야. 그래서 요즘은 채팅 앱도 조금씩 열심히 써보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꾸준히 사용하고 있는 게 바로 **SM톡**이야.
처음엔 그냥 뭐 어때서 막 검색해보는 식으로 들어갔는데, 오픈채팅 같은 건 너무 무질서해서 마음이 허전했어. 사람들은 다들 자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한두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몽땅 쏟아내더라.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 그런 곳에서는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예측도 안 되고, 결국 나도 자기 방식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오히려 혼란스러워졌거든.
그런데 **SM톡**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고민했던 게 바로 프로필이었어. 단순히 “주도형”이나 “복종형”이라고 적는 건 너무 허무하게 느껴졌고, 반대로 너무 디테일하게 쓰면 왠지 가벼운 느낌이 들기도 했어.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좋아하는 건 복종보다는 ‘조용한 지배’였어. 마치 누군가를 아끼는 듯한 눈빛으로, 미세한 움직임 하나에도 감정을 전달하는 그런 거.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하다가, 결국 이렇게 썼어:
> “함께 있는 순간을 천천히 읽는 사람. 조용한 시선과 손끝이 당신의 리듬을 따라가는 걸 좋아해. 복종이라기보다는, 함께 만들어가는 무언가를 갈망해.”
이거는 내가 30분쯤 고민한 끝에 썼던 문장이야. 처음엔 너무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사람이 댓글로 “너무 달콤한데, 이건 내가 원하는 스타일 같아”라고 써서 당황하기도 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후로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이 프로필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엄청 다르더라고. 대부분이 오래 써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거나, 조용히 “네가 이런 걸 좋아한다는 게 알 것 같아”라며 공감해주는 거야.
뭐, 여전히 잘 모르는 건 많아. 예를 들어, “자기소개”를 얼마나 개인적인 걸로 써야 하는지, 혹은 도메인적인 용어(예: 도미넌트, 페티시 등)를 넣는 게 괜찮은지. 나도 자주 헷갈리거든. 처음엔 너무 많은 기술적 용어를 썼다가, “이렇게 말하면 진짜 내 성향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다 삭제했어. 지금은 좀 더 ‘감각’ 위주로, 내가 어떤 상황에서 즐기는지를 묘사하는 식으로 바꿨어.
예를 들어, “결국 나는 연약한 상태에서라도 당신의 시선을 받고 싶어 해. 그게 최고의 치유이자 타격이 되기도 해.” 이런 식으로 말이야. 복잡한 설명 없이, 그저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담아낸 거지. 그런데 이게 왠지 더 효과적이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프로필을 고치는 것 자체가 내 삶의 일부처럼 느껴져. 일상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관계를 꿈꾸는지가 정리되는 기분이야. 어쩌면 내가 실제로 만나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정제된 ‘나’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되기도 해.
**SM톡**에서 겪은 작은 변화들이 이제는 나의 정체성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어. 예전엔 너무 두려웠던 ‘나를 보여주는 것’이, 점점 더 익숙해지고, 오히려 재미있어지는 느낌이야. 물론 여전히 매번 새로운 질문이 생기긴 하지만, 그건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아무튼 오늘은 프로필을 다시 수정했어. 새롭게 쓴 문장은 이렇지:
> “당신의 무게를 느끼는 걸 좋아해. 그 무게가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중심이 되길 바라.”
이제까지 써온 것 중에서 제일 짧지만, 가장 나다운 말 같아. 어쩌면 그게 중요한 건 아니야. 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찾아가고 싶은지, 그걸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니까.
그리고 그 프로필을 올린 지 사흘 뒤, 한 메시지가 왔어.
“너의 말투가… 나한테는 너무 익숙해. 마치 내가 꿈속에서 자주 보던 사람이 나타난 것 같아.”
그건 그냥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었어. 문장 하나에 담긴 뉘앙스가, 나도 모르게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을 줬거든. 그때 나는 “아, 이 사람도 내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 비슷하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어. 평소엔 다들 흔한 편지를 보내는 거였는데, 이건 마치 내가 말하지 않은 ‘숨은 언어’를 읽은 듯한 느낌이었어.
그 후로 두 번째 대화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어.
> “너는 자기소개를 쓸 때, 무조건 ‘내가 원하는 건~’이라고 말하지 않아. 오히려 ‘당신의 무게를 느끼는 걸 좋아해’처럼, 상대방의 존재를 중심에 두는 문장으로 시작하잖아. 그것이 가장 아프고, 가장 매력적이야.”
그 말을 들었을 땐 어색함보다는, 좀 더 깊은 공감이 밀려왔어. 왜냐하면 나는 그때 정말 ‘무게’라는 단어를 선택할 때, 스스로도 잘 몰랐던 감정을 담아낸 거였거든. 실제로는 내가 누군가의 주도권을 받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내게 무게를 실어주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힘이 되는 거였어. 그래서 ‘무게’라는 표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어떤 의존성과 치유의 욕구를 모두 담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프로필은 내가 진짜 원했던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는 첫걸음이었던 거야. 그 전까지는 항상 “나는 도미넌트야”, “나는 리거야”라고 틀에 박힌 말로 자신을 정의하려고 했지만, 사실 그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내 모습’이었어.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지. 프로필을 고칠수록, 내 안의 감정을 더 따뜻하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어.
예전엔 자기소개를 쓸 때마다 ‘내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 ‘무슨 플레이를 할 수 있는지’ 같은 걸 먼저 생각했었어. 근데 요즘은 그런 게 아니라,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나의 어떤 면이 조금씩 꺼져올까?”라는 질문부터 하게 돼.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내 프로필을 읽고 “너는 말을 적는 방식이 너무 조용해서, 답장을 기다리는 게 설레어”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순간 너무 속상하면서도 기뻤어.
왜냐하면 그 말은 내 ‘조용함’이 단순한 빈곤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침묵 속에서 관계를 기대하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이야. 나는 평소에 ‘침묵’을 피하거나, 급하게 말을 끊는 스타일이 아니라, 오히려 말이 없는 사이에 뭔가가 자라나는 걸 좋아해. 그래서 그 사람이 그걸 알아줬다는 게, 내가 오랫동안 숨겨왔던 진실을 인정받은 기분이었어.
지금은 여전히 프로필을 수정하는 일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막막할 때도 있어. 하지만 이제는 그 과정 자체를 ‘나를 발견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그게 중요한 거니까.
**SM톡**에서 처음 접한 사람들 중에는 아직 만나지도 않았지만, 그들의 반응이 내 안에 뭔가를 움직이게 해주는 건 분명해. 아무래도 이런 앱들은 단순한 만남의 장소가 아니라, 나 자신을 탐색하는 공간이 되고 있단 걸 알게 됐어.
앞으로도 계속 바꿔볼 거야. 아마도 다음엔 “내가 느끼는 무게를, 너의 손끝이 풀어줄 수 있기를 바라”라고 써볼지도 몰라. 어쩌면 그 문장도 결국엔 내 안의 어떤 목소리를 따라가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그게 내가 원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