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척하는 장면에 완전히 빠져드는 이유

어릴 적부터 나는 좀 이상한 데가 있었다고 생각했어. 어쩌다 보니, 사람들은 나를 ‘예민하다’,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게 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탐색의 결과였던 거야. 예를 들어, 동영상 보다가 길이 10분짜리 장면에서 갑자기 죽은 척하는 캐릭터가 나오면, 그 순간 내 마음이 싸늘해지고, 숨이 멎는 느낌이 들었지. 그리고 또 그 이후로 수십 분간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었어. 그냥 눈 앞이 흐릿해졌고, 마치 내가 그 캐릭터처럼 쓰러진 것 같았어.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걸 '나쁜 감정'이라고 생각했다는 거야. 내가 왜 그런 걸 좋아할까, 왜 그런 상황에 몰입하는지, 그게 정상적인 건지 모르겠었고, 결국엔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계속 반복했어.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억누르려고 노력했고, 영화도, 드라마도, 심지어 음악까지도 막연히 피하게 됐어. 아예 볼륨을 줄이고, 소리를 끄고, 조용히 앉아서 ‘제발 이건 아니야’라고 속으로 중얼거렸지.

그런데 한 번은, 우연히 옛날 동아리 친구랑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그 이야기를 털어놨어. 그 친구는 오랜만에 보는 사이여서 설레기도 하고, 가볍게 웃으며 “아, 너 진짜 그거 잘 해?”라고 하더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잠깐 멈췄어. 내가 그걸 ‘좋아한다’는 표현을 하지도 않았는데, 친구는 오히려 내 취향을 인정하고 있었던 거야. 그때부터 조금씩 내 마음이 열렸어. 왜냐하면, 나는 그저 ‘그게 좋았다’고 느꼈을 뿐인데, 그것을 ‘사실은 불편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혼내던 게, 더 이상 맞지 않았거든.

그 후로는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경험을 해보기 시작했어. 처음엔 너무 낯설어서 도저히 못했는데, 어느 날 친구에게 사전 설명도 없이 ‘혹시 이런 거 해볼래?’라고 말했고, 그 친구가 흔쾌히 응해주었어. 사실 그건 단순한 조작이 아니라, 아주 미묘한 통제와 방해의 교차점이었어. 나도 모르게 그 상황에 몰입돼서, 목소리가 작아지고, 손끝이 떨렸고, 그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어. 그 순간, 나는 다시금 ‘이게 나다’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런 경험을 더 깊이 있게 만들 수 있을 법한 방법을 찾아봤어. 그 과정에서 ‘SM톡’이라는 앱을 알게 됐어. 기존에 오픈채팅 같은 데서 접했던 사람들과는 달리, 여기선 토크 자체가 좀 더 섬세하고, 서로의 경계선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신기했어. 단순한 채팅이 아니라, 일종의 상황 설정이나 역할 연습 같은 게 가능해서, 내가 원하는 정도의 몰입감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었지. 그리고 그걸 통해, 나는 점점 더 ‘내가 좋아하는 게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어.

처음엔 ‘내가 이걸 어떻게 견뎌야 할까’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내가 이걸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는 거야. 여전히 부담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 감정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이라고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있어. 그게 제일 큰 변화인 것 같아.

그 이후로도 계속 그 감정을 품고 살았어. 처음엔 너무 낯설어서, 매번 경험할 때마다 ‘이건 과연 내가 해야 할 일인가’ 싶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가슴이 조여오는 기분이 들었지. 특히 그 채팅 앱에서 상대와의 대화가 끝난 후, 아무 말 없이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 왔어. 마치 누군가 내 안의 어떤 문을 열어주고, 다시 닫아버린 것 같았거든. 그 문 안에 있던 게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게 나였다는 걸 깨달은 건 그때부터야.

그런데 한 달쯤 지나서, 갑자기 예전에 못 하던 영화를 보게 됐어. 그냥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발견한 드라마인데, 제목은 기억 안 나지만, 주인공이 갑자기 무력하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장면이 있었어. 나는 그걸 보면서, 눈을 깜빡거리지도 못했고, 심장이 너무 빨리 뛰는 걸 느꼈지. 그런데 이번엔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내가 그 장면을 끝까지 다 보고, 그 후에도 평온하게 방에 앉아 있었다는 거야. 전혀 자책하거나, '왜 또 이거야'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오히려 그 장면이 끝난 후, 내가 조금 더 자유롭게 숨을 쉬는 걸 느꼈다는 게 신기했어.

그때서야 깨달았어. 내가 오랫동안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사실은 ‘내가 나를 진짜로 보는 법’을 알려주는 거였다는 걸. 그걸 부정하려다 보면, 내가 겪는 모든 감정이 ‘문제’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그 감정 자체가 ‘나’라는 증거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게 꼭 부끄러운 건 아니란 걸, 이제야 이해가 되는 거야.

지금은 여전히 험난한 순간들이 있어.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서 내가 원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거나, 상대가 너무 빨리 멈추면 불안해지기도 하고, ‘내가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하지만 그런 감정이 와도, 이제는 “아, 이게 나의 취향이 맞는 걸까”보다는 “아, 이건 나의 감정이니까 받아들이자”라고 말할 수 있게 됐어. 그게 큰 변화야.

또 하나, 요즘은 ‘SM톡’에서 만난 사람 중 한 명과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어. 처음엔 단순히 상황 설정만 했는데, 점점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났어. 그 사람은 나에게 “너는 감정을 정말 깊이 느끼는구나”라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당황하기보다는, 오히려 ‘아, 그래, 맞아’라고 고개를 끄덕였어.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보는 걸 보며, 내가 더 이상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이라는 걸 실감했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내가 지금까지 부정했던 건 아마도 ‘나 자신을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그 감정들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게 두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좀 더 자유로워졌다는 걸 느껴. 그리고 그 자유를, 이제는 ‘나의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됐다는 게 가장 큰 위로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