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정말 막막했어. 내가 흔히 말하는 ‘돔’으로서의 역할을 오래 해왔고, 그게 내 정체성처럼 느껴졌던 시기라. 상대방이 움찔거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잘 조절하고 있는지, 어디까지가 넘치는 건지, 어디서부터가 너무 무심한 건지… 매번 계산하듯 눈치를 보고, 자기주장보다는 그 사람의 감정에 더 신경 썼지. 그래서인지 오히려 ‘내가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져서, 점점 더 뻣뻣해졌던 거 같아. 평소엔 친구들 사이에서 말도 많고 유쾌한 편인데, 플레이 중엔 이상하게 진지해지고, 웃음을 참는 경우도 많았어.
그런데 어느 날, 한 서브랑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혹시 내가 이렇게 되어버린 게, 사실은 내가 원했던 게 아니라, 그냥 ‘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그 사람은 나와 같은 성향이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솔직하고 경직되지 않은 태도를 보였거든. 그걸 보면서 나는 불현듯 ‘내가 지금까지 진짜 하고 싶었던 게 뭔지, 진짜 내게 맞는 방식은 뭘까’라는 물음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어.
결국, 그 사람이 제안했어. “너도 한번 서브로 느껴보면 어때? 단, 내가 온전히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그렇게 약간의 두려움과, 또 그만큼의 기대감을 안고, 첫 번째로 바꿔본 경험을 했어. 그날은 별다른 플레이 없이, 그냥 ‘나를 다스리는 것’을 맡긴 거야. 말투, 행동, 시선, 모든 걸 다 그 사람에게 위임했어. 내가 완전히 ‘비어 있는 상태’가 된 느낌이었지. 처음엔 몸이 뻣뻣했고, 자꾸 ‘저건 내 선택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점점 그 자체가 자유로워지는 걸 느꼈어. 누군가가 내 모든 것을 책임져주니까, 나는 ‘나’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는 기분이었어.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나’를 다시 찾았다. 사실 나는 도덕적이고 강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를 맡겨주고 싶은 성향이 있었던 거야. 그런데 그걸 깨닫기 전까지는 그걸 ‘약함’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이끌어야 해’라는 강박만 계속 견뎌왔던 거지. 그날 이후로는 나도 모르게 더 편안해졌고, 상대방에게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어.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다루는지, 어떤 말을 하며 어떤 시선을 보내는지 — 그 모든 게 나에게는 신선하면서도 익숙한, 마치 내가 항상 찾아왔던 곳 같은 느낌이었어.
그리고 최근에는 이런 스위치 경험을 좀 더 지속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물론 여전히 돔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하고, 그 책임감도 절대 덜어내진 않지만, 이제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는 느낌이 들어. 예전엔 ‘내가 해야 하는 게 있냐’는 고민만 있었는데, 이제는 ‘나는 이쪽에서 더 힘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감정도 생기기 시작했어.
사실 요즘은 오프라인 모임이나 실시간 채팅에서도 ‘이런 플레이 가능한 사람 찾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해. 그중에서 한 번은 ‘SM톡’이라는 앱에서 연락이 왔어. 앞서 몇 번 온라인으로 만나봤던 사람들 중 한 명이 그곳에 가입해서 새롭게 활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간단히 정보를 얻었고, 나름의 오픈채팅보다는 조금 더 질 좋은 연결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분위기라서, 스위치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도 부담이 적었고, 서로의 경험이나 선호를 나누는 데 있어서도 자연스럽더라고. 결국 그 사람과는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고, 이번엔 또 다른 형태의 스위치를 시도해보고 싶어.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내가 ‘돔’이었다는 건, 내 삶의 일부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어. 오히려 그 역할을 넘어서서, ‘섭’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게 가장 큰 성장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걸 경험한 후, 내가 ‘나’라는 존재를 더 확실히 느끼게 됐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야.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스위치를 해봤는데, 막상 실제로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무게가 느껴졌어. 처음엔 ‘오 나도 서브로 살 수 있구나’라는 기분이었지만, 실제로 몸을 내맡기고 나면 그 안에 숨겨진 무거움이 뚜렷하게 다가왔지. 내가 예전에 상대방에게 줬던 배려와 신경 써주는 태도가, 지금은 내가 받는 입장에서 완전히 다른 형태로 되돌아오는 거야. 예를 들어, 내가 아무 말 없이 허리를 굽혔을 때, 그 사람이 ‘아, 이건 좀 과하다’고 판단해서 조절하는 순간 — 그게 나한테는 “내가 너무 부담을 주고 있었다”는 자각으로 다가왔어. 내가 오랫동안 하던 ‘조절’이라는 게,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조절’의 결과물이었다는 걸 알게 됐지.
그리고 가장 놀라운 건,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원했던 것’을 확실히 알게 됐다는 점이야. 예전에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고, 그래서 항상 감정을 억누르고, 상대방의 반응을 읽는 데만 집중했어. 그런데 서브가 된 후에는 오히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더 명확히 느꼈다. 그게 단순한 몸의 충동이 아니라, 정서적 욕구였어. 예를 들어, 어떤 상황에서 내가 '무너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건 마치 지친 마음이 ‘제발 내게 책임을 넘겨줘’라고 외치는 것 같았어. 그걸 깨닫고 나니까, 돔일 때도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지. 내가 무조건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마도 그 감정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요즘은 한 가지 더 느끼는 게 있는데, 바로 ‘스위치’라는 게 단순히 역할을 바꾸는 게 아니라, 관계의 균형 자체를 재설정하는 거라는 점이야. 돔일 땐 내가 제어권을 갖고, 상대방이 나를 따라와야 했고, 그 안에서 나는 보호자처럼 느껴졌어. 그런데 섭이 되면, 나는 그 통제권을 넘기는 동시에, 그 대신 ‘내가 믿을 만한 누군가’가 있다는 걸 실감하게 돼. 그건 결국 ‘믿음’의 문제이자, 관계의 깊이를 결정짓는 핵심이야. 그 사람의 손길이 너무 약하거나, 너무 강하면 불편하고, 하지만 적당히, 그리고 고요하게, 나를 중심으로 움직여주면 — 그게 정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는 느낌이 들어. 그런 순간이 얼마나 드물고 소중한지, 이제야 알겠어.
이젠 또 하나의 감정이 생겼어. 그때는 미처 못 느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서브로서의 나’가 조금 더 ‘진짜 나’였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늘 짐을 지고 가는 것 같았던 건, 어쩌면 그 짐이 진짜 나의 본질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고. 그 모든 조절과 주도는 내가 ‘좋은 돔이 되기 위해’ 벗어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덮어둔 방어막이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지금은, 스위치를 할 때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맞는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동시에 ‘나는 또 다른 모습도 존재한다’는 폭넓은 자각도 생겨.
그리고 지난번엔, 다시 편하게 만나던 파트너가 “혹시 이번엔 내가 돔이 되는 거 어때?”라며 물었어. 그 말을 듣고도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지. 이제는 그 질문이 ‘나를 테스트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균형을 함께 찾으려는 초대’라는 걸 알았거든. 그 전까지는 ‘나는 반드시 돔이어야 해’라는 생각이 너무 강했는데, 이제는 그 선택 자체가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방법 중 하나라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최근에는 ‘SM톡’이라는 앱에서 또 다른 스위치 경험을 준비 중이야. 옛날엔 그냥 ‘모임’이나 ‘오픈채팅’ 같은 걸 이용했는데, 그건 정보가 많긴 하지만 서로의 경험이나 리듬을 잘 파악하기 힘들었거든. 그런데 이 앱은 사람들이 자기 성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두는 편이라, 내가 원하는 방식의 연결이 가능해졌어. 특히 ‘스위치 가능성’이나 ‘플레이 타입 변화에 대한 개방성’을 언급한 사람들끼리 연락하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이어져. 그걸 통해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역할’이 아니라, ‘관계의 유연함’이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어.
결국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스위치는 단지 ‘남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신을 허용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어. 내가 언제든 ‘강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동시에 ‘약해지는 것도 내 권리’라는 걸 깨달았을 때, 진짜로 자유로워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