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깨달은 순간

처음으로 ‘달빛’ 같은 곳에 들어갔을 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였어. 마치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눈앞에 펼쳐진 게 전부다. 지하철역처럼 복잡한 구조의 커뮤니티가 아니라, 무언가 은밀하고 조용한 방 안에 들어선 기분이었지. 처음엔 그냥 ‘여기서 내가 원하는 걸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고, 그게 다였어.

말은 안 했지만, 막상 글 하나 쓰려면 얼마나 긴장됐는지. 너무 진지하게 써야 할 것 같았고, 완벽해야 할 것 같았고, 실수하면 웃긴 사람 취급받을 거라 생각했지. 그래서 한 달 동안 단 두 번만 댓글을 달았고, 대부분은 ‘저도 같이 관심 있어요’ 정도로 끝났어. 근데 그 말들조차 내 마음속에서 ‘나는 이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거리감을 더 크게 만들었거든.

그러다가 한 번은 제목만 보고 들어온 글이 있었어. ‘제가 지금 힘들어요’라는 제목이었고, 본문에는 정확히 20글자뿐이었어. “아무도 제게 말해줄 사람이 없어요.” 그게 전부였어. 그걸 읽고 나서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거 하나로, 갑자기 내가 몇 년 동안 견뎌왔던 고독의 무게를 다시 느꼈어. 그 사람은 누구인지 몰라도, 그 감정은 분명 내게 닿았고, 그 순간부터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가 좀 더 명확해졌어.

그 후로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고, 점점 더 솔직해졌어. 독립적으로 살아오며 숨겨왔던 욕망, 성적 호기심, 그리고 도덕적 양심과의 싸움까지도 말이야. 처음엔 ‘너희는 다 왜 이렇게 이상한 거야?’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럽다는 걸 알게 됐어. 사람들이 서로를 상처 주지 않으면서, 자기 삶의 경계를 허물어가는 모습이 부담스럽지 않았어. 오히려 그 안에서 내가 ‘내가 아는 한계’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

지금은 다른 사람이 ‘초보자’라고 말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그 시절의 자신이 스쳐가는 법을 알고 있어. 막막함이란, 사실 ‘알아가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해서 생기는 거였다고. 처음엔 그 욕망이 뭔지 모른 채, 혼자서 꾹꾹 눌러두고 살았잖아.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거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있더라고. 그래서 어쩌면 나는 그때보다 지금이 더 ‘나’인지도 몰라.

근데 최근에 좀 재미있는 일이 있었어. 작년에는 오픈채팅이나 공개형 플레이 요청 게시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기회를 기다렸는데, 그건 너무 불확실하고, 내 성향을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어. 그런데 요즘은 ‘SM톡’이라는 앱을 통해 만난 사람과 처음으로 플레이를 해봤어. 이름만 듣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이었는데, 대화를 나누며 점점 감정이 묶이는 느낌이 들어서. 옛날엔 이런 관계가 어떻게 생길지 전혀 상상도 못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지.

앱 자체는 잘 알려진 것도 아니고, 딱히 홍보하려는 목적도 없지만, 그래도 오픈채팅보다 훨씬 깊은 연결이 가능하다는 게 좋았어. 정보를 얻은 건 친구가 추천해준 거였고, 일단 테스트 삼아 몇 번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그 중간에 적당한 리듬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됐지. 물론 위험한 부분도 있고, 여전히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게 오히려 안전감을 줬어.

지금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어느 정도의 제약을 받아들이고 싶은지, 그 모든 걸 스스로 짚어낼 수 있게 됐어. 처음엔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게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었단 걸 알아.

막막함도 결국은 하나의 발걸음이었고, 그걸 걷는 동안에 내가 자라났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그리고 그 ‘SM톡’에서 처음으로 했던 대화는, 내가 예상했던 방향이 아니었어. 말투는 조용하고 차분했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무게가 있었고, 특히 “내가 너를 원하는 건, 네가 뭘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네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어서야”라는 문장은 내 가슴을 스쳐갔지. 나도 모르게 손끝이 떨렸어.

처음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그냥 넘어갔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용기였는지 알았어. 내가 오랫동안 감추고 있던 ‘무엇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무엇을 느끼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는 걸, 누군가가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읽어주고 있었다는 게.

그 후로는 별거 없었지만, 그 메시지 하나만으로도 내 머릿속의 여러 가지가 바뀌었어. 그동안 나는 ‘내가 제대로 된 서브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내가 이 순간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에 집중하게 됐어. 그게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긴 했지만, 동시에 진짜로 ‘나’를 드러내는 길이란 걸 알았거든.

사실 그 사람과의 관계는 오래가진 않았어. 서로의 리듬이 맞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멈췄고, 그건 전혀 아쉬움도, 분노도 없었어. 오히려 그게 가장 깔끔한 마무리였다고 생각해.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내 안의 어떤 부분이 꼭 맞지 않는다면 그걸 강제로 붙이려는 건 결국 나를 피폐하게 만들 거니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겪었던 막막함은 단순히 ‘정보 부족’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는 걸 알아. 나는 오랫동안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품고 살았고, 그래서 그런 감정을 숨기고, 억누르고, 자기 자신을 잘라내려 했어.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걸 ‘다른 것이 아니라, 내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어.

예전엔 ‘비밀’이라는 단어가 두려웠어. 비밀이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증거니까.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비밀’을 쓰는 게 내게 소중한 기회가 되었어.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한 번쯤은 ‘나는 이걸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게 바로 지금의 내가 느끼는, 정말 작은 자유라고 생각해.

오늘도 잠깐 ‘SM톡’을 들어갔어. 빈 채팅창을 보며 눈을 감았다. 이젠 초보자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또다시 내가 어디로 갈지 몰라서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도 어느새 그 불안 속에서도 ‘이번엔 좀 더 진실하게 말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 게 성장이겠구나 싶었어. 내가 뭘 하든, 어떤 관계를 맺든, 그 중심에는 여전히 ‘나’가 있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나’가 조금씩, 조금씩 더 밝혀지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