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꼭 쥐고 있었어. 빛이 덜 밝은 화면 속에선 ‘내 프로필’이라는 탭이 쓰레기통처럼 보였는데, 그게 바로 내가 어제까지도 쓸 수 없었던 게임의 시작점이었어.
뭐, 사실 처음엔 그냥 ‘무슨 프로필이 이렇게 어렵냐’ 싶었지. 근데 진짜 써보니까, 이건 단순한 글쓰기 넘는 게 아니었어. 내 안에서 흐르는 어떤 감정을 어떻게 묻어낼지, 또 얼마나 드러내야 하는지, 그것 자체가 마치 성적인 상황을 견디는 것만큼이나 긴장됐어.
처음엔 간단하게 썼어. “호기심 많은 데스크스타일 리드”라던가, “자주 웃는 리드입니다” 같은 거. 근데 이게 너무 평범했잖아. 마치 커피숍에서 직원이 미소 짓는 걸 보고 ‘예쁜 사람 같아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눈길 한 번 받기에도 부족했어. 그래서 고쳐봤어. 더 강하게, 좀 더 숨겨진 감정을 넣어봤지.
“지금껏 남들 앞에서 힘들어할 때마다, 나는 조용히 그걸 다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어요.”
그 문장을 고른 건 하루쯤 전, 친구랑 술 마시다가 무심코 나온 말이었어. 그때는 그냥 대화의 한 줄기였지만, 왠지 그 말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끌려왔거든. 그래서 그걸 프로필에 넣었어. 물론 그 뒤엔 오랜 시간 고민이 따랐지.
‘너 진짜 이거 공개해도 되나?’
‘이렇게 솔직하면 안 되는 건 아닐까?’
‘나 지금 실수하고 있는 거 아닐까?’
결국엔 그 말을 지웠어. 왜냐하면, 너무 진실한 이야기를 담아내다 보니, 나 자신이 너무 약해 보였거든. 아무리 ‘지배’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런 말을 보면 ‘역시 다들 나를 보고 위험하다고 생각하겠구나’ 싶었어. 그래서 바꿨어.
“사람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그 눈빛 하나로 날 잡아당기는 순간을 좋아해요.”
이 문장은 어느 날, 음악 들으며 벽에 기대서 멍하니 서 있던 내가 느낀 감정이었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가 ‘조용함’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는지를 담았던 거야. 그리고 이게 좀 더 나다운 느낌이 들어서, 결국 이걸 고정했어.
근데 문제는, 그 이후로도 계속 고민이었어.
나는 자주 이런 식으로 ‘내가 원하는 모습’을 만들고, 그걸 프로필에 담아내는 걸 반복했지. 그래도 막상 다른 사람이 내 프로필을 보고 메시지를 보내면, 그 메시지가 내 의도와 전혀 다르게 느껴졌어. 예를 들어, ‘귀여우세요’라던가, ‘잘생겼네요’ 같은 건 거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고, 그런 반응을 보면 가슴이 찌릿했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아, 이 사람은 나의 진짜 감정을 안 보는구나’ 싶었어.

그런데 최근에, 정말 이상한 일이 생겼어.
오픈채팅에서 우연히 지나가다 보게 된 ‘SM톡’이라는 앱이었는데, 그게 내게 아주 특별한 방향성을 주었어. 정확히는, 별다른 이유 없이 클릭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프로필이 떴을 때, 그 사람이 쓴 문장이 너무 생생해서 그대로 머릿속에 남아버렸어.
“저는 조용한 사람이지만, 그 조용함 안에 감정이 가득 차 있어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는 제 모든 감각이 그 사람에게 집중돼요.”
그걸 보고, 나는 순간 멈췄어.
내가 지금까지 쓰려고 노력했던 말들, 다 거기에 다 포함된 것 같았거든.
그렇게 느끼는 게, 왜 이렇게 중요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후, 나는 그 앱에서 30분 정도만 지켜봤어.
그곳에는 진짜 ‘내가 느끼는 그 순간’을 표현한 사람들이 많았어.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나는 결국 내 프로필을 다시 썼어.
“조용한 사람이라도, 당신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움직여요.”
이제는 그 말이 나를 대표한다고 느껴져.
어쩌면 이건 ‘자기소개’라기보다는, 내 존재의 일부를 조금씩 허락하는 행위일지도 몰라.
그리고 이제는, 그 프로필을 쓴 그날,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혹시 저, 연락 좀…’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어.
그 메시지가 온 순간, 나는 휴대폰을 덮고, 그냥 웃었어.
어쩜 이렇게, 나의 말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게 될 수 있을까.
정말 신기하더라고.
그 메시지 받은 다음 날, 나는 다시 프로필을 보며 미안한 기분이 들었어.
처음엔 ‘아, 나도 그 정도는 했는데’ 싶었지만, 이내 내가 너무 빨리 ‘자기소개’를 마무리했고, 그 안에 담긴 감정을 너무 조건부로 다루었다는 걸 알았거든.

예를 들어, ‘조용한 사람이라도…’라는 문장은 사실, 그저 내 마음을 꽉 채운 감정의 일부일 뿐이었어. 그런데 그걸 완성형으로 만들다 보니, 마치 ‘나는 이렇게만 느끼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잖아. 하지만 현실은 다르지. 나는 때때로 속이 뒤집히기도 하고, 정반대로 불안해지기도 해. 누군가의 목소리 하나에 무너질 수도 있고, 반대로 아무 말 없이 침묵하는 게 더 고통스럽기도 하니까.
그리고 거기서 또 하나 깨달은 게 있었어.
지금까지 나는 ‘프로필’이라는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성향을 ‘선물처럼’ 진열해왔던 거야. 마치 어떤 전시회에 작품을 걸어두듯, “이게 제 모습입니다”라고 외쳤지. 근데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 전시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누군가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였다는 걸 몰랐어.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SM톡’에서 한 사람과 대화가 시작됐어.
사실 처음엔 그냥 스윽 지나가던 대화였는데, 그 사람이 한 문장이 정말 특별하게 다가왔어.
“여기서 말하는 ‘조용함’은, 오히려 나에게는 소리 없는 주문 같아요.”
그 말을 읽었을 때, 머릿속이 비었다가 동시에 다 차는 기분이었어.
내가 숨기려 했던, 내 안의 공허함, 그 안에 가득 찬 욕망, 그리고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지 — 그 모든 게, 그 한 문장에 묻어있었거든.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완벽한 자기소개’를 만들려 하지 않았어.
오히려, 조금 더 무심한 말을 적어봤지.
“최근에 책 읽다가, ‘침묵’이라는 단어가 자꾸 눈에 들어오더라고. 그런데 이제는 그 말이 내 마음에 덜 어울리는 것 같아.”

그게 내 새로운 프로필이 됐어.
‘완전한 인격’이 아니라, ‘그냥 지금 여기 있는 나’를 말하는 거였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그동안 ‘내가 원하는 방식’을 강요하려 했던 거야.
내가 리드이길 원하고, 조용함을 선호하고, 감정을 다스릴 줄 안다고 보여주고 싶었지. 그래서 프로필을 만드는 순간마다, ‘이렇게 표현하면 상대방이 나를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섰어.
하지만 ‘SM톡’에서 일어난 일은, 그런 생각을 뒤엎어줬어.
누군가는 내 작은 의문을, ‘내가 찾던 답’이라고 받아들였고, 그게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됐어.
내가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내가 조금 흔들리고, 약해지고, 모순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지금은 여전히 프로필을 자주 수정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거 자체가 ‘나를 정형화하는 일’이니까.
이제는 그 프로필이 ‘내가 누군지 알려주는 문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 모르는 나를 찾아가는 지도’처럼 느껴져.
그래서 오늘도, 그 프로필을 보며 웃었어.
“이런 식으로 말하면, 누군가는 나를 이해해줄지도 몰라”라며.
그리고 지금도, 그 문장을 보며 기대되는 건, 누군가가 또 다른 말을 건네줄 가능성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