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걸 말할 수 있게 된 순간, 우리 관계는 더 이상 ‘일정’이 아니었어

어떤 파트너와도 처음엔 다 비슷해. 처음 만났을 때는 어색함이랑 긴장감이 섞여서, 말 한마디 건네기 전에 체크리스트처럼 생각해봤던 거 같은데. 내가 그랬던 거 같아. 뭐라 말할 수 없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고,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더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나.

내가 지금까지 오래 같이 플레이하는 파트너가 있는데, 사실 3년 정도 됐다고 보면 되겠네. 처음엔 그냥 ‘일정’이었어. 토요일마다 만나서 짧은 시간만 보내는 게 기본이었고, 대부분의 대화는 플레이 시작 전 준비 과정이었지. “오늘은 어떤 장비 쓸 거야?” “그런 거 괜찮아?” 이런 식으로 서로를 확인하며 시작했지. 그때는 내 마음속에서 ‘좋아요’라는 말이 정확히 뭔지 알기보다는, 상대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는 것 자체가 기분 좋았어.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달라졌어. 처음엔 내가 원하는 방식이었던 게, ‘내가 지시하고, 그가 따르는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반대로 바뀌었어. 아니, 그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경계선이 흐려졌다는 거지. 예를 들어, 내가 ‘더 강하게 해줘’라고 했을 때, 그가 그 말을 듣고 바로 했던 게 아니라, 잠깐 멈추고 “정말로 이거 하고 싶어?”라고 물었어. 그 순간, 나는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 왜냐하면 그건 이미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로 원하는지’를 확인하려는 거였거든. 그 말 하나로, 내가 단순히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로 감정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

그 이후로는 조금씩 달라졌어. 내가 무언가를 원하거나 억누르고 있던 감정을 말로 풀어내는 일이 늘어났고, 그가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도 변했어. 처음엔 너무 신경 써서, 내가 힘들어 보이면 바로 손을 뗐지만, 요즘은 오히려 “힘들면 말해”라고 말하면서도, 그대로 계속해주기도 하잖아. 약간의 고통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함께 견뎌내는 느낌이랄까. 그게 이제는 ‘성취’가 아니라 ‘공존’이 된 것 같아.

이번엔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인데, 내가 오랜만에 흐르는 감정을 털어놓았어. 갑자기 “이제 더 이상 그냥 끝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라고 말했거든. 그 말을 듣고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그럼 너는 이제 안전한 곳에 있다고 느끼는 거야?”라고 물었어. 그 질문에 나는 머리를 끄덕였고, 그는 그런 말을 했어. “그럼 오늘은 좀 다르게 해볼까? 네가 아예 제어권을 넘기는 거야.”

그건 우리 사이에 처음 있는 일이었어. 나는 손목을 묶는 것을 넘겨주고, 그가 전체적인 흐름을 결정하도록 했지. 그 과정에서 나는 무조건적으로 믿는 게 아니라, 믿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느꼈어. 그는 내가 막히거나 불편할 것 같은 순간을 눈치채서 조절했고, 내가 말을 못 할 정도로 몰입됐을 땐 자동으로 힘을 줄여줬어. 그게 가장 큰 변화였다고 생각해. 아무리 좋은 플레이도, ‘조작’이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해야 진짜 의미가 생긴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했어.

그리고 요즘 내가 쓰고 있는 채팅 앱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사실 그건 예전엔 별 생각 없이 그냥 스쳐가는 용도였는데, 최근에 ‘SM톡’이라는 앱을 알게 됐어. 다른 오픈채팅 같은 곳보다 정보가 구체적이고, 사용자들의 프로필도 실제 경험담처럼 써져 있어서 좀 더 진지하게 다가왔지. 내가 처음으로 그 앱에서 올린 글은 “3년째 파트너와의 플레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반응이 와서 놀랐어. 그중엔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고, “그런 관계를 꿈꾸는 중이에요”라는 댓글도 있었고. 그것도 참 재미있었어. 우리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관계가, 누군가에게는 ‘모범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결국 이런 관계는, 단순히 육체적 혹은 기술적인 숙련도가 아니라, 시간과 정직함이 쌓인 결과물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어. 처음엔 ‘내가 원하는 대로’를 위해 만들었다가, 이제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을 위한 거라 느껴진다. 그래서 매주 만나는 그 시간이, 이제는 그냥 ‘일정’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가 된 것 같아.

그 이후로도 계속 그 관계는 움직였어. 사실 처음엔 내가 너무 의존적인 걸 깨닫고 조금 불안했지. 내가 더 이상 ‘조절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내 감정이 과잉으로 터져나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막아내려 하기보다는 그냥 놔두는 게 어색했어. 예를 들어, 한 번은 흐름이 빨라졌을 때 갑자기 눈물이 났는데, 그게 왜 났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어. 다만 그 순간, 내 몸이 나를 거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걸 말로 못 해서 더 힘들었지.

그런데 그 파트너는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았고, 묶인 상태에서도 내가 숨을 고르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줬어. 그런 행동 하나로, 내가 지금까지 견뎌온 무언가를 다 보여주는 것 같았어. 그는 그때 “괜찮아”라고 말하기보다는, “지금 너의 기분이 뭐든, 그거 다 존중돼”라고 했거든. 그 말을 듣고 난 정말 허물어졌다고 할까, 아니면 반대로 뭔가 안심이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 후로 나는 좀 더 자신 있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게 됐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또 다른 변화가 생겼어. 우리가 이제는 단순히 플레이만 하는 게 아니라, 가끔은 편하게 서로의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예전엔 대화가 거의 없었거든. 오직 플레이 시간에만 존재했고, 그 외엔 서로 별개의 인생이었던 셈이지. 그런데 요즘은 주말에 커피 한 잔 하며 스마트폰으로 사진 공유도 하고, 최근에는 내가 읽은 책을 얘기해주기도 해. 그럴 때마다 그가 “넌 진짜 내 생각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네”라고 말했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었는데, 그건 사실 ‘다르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이, 하나의 작은 시험대였던 것 같아. 그 시험대에서 내가 성장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그 관계를 ‘완성된 상태’라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상태’로 받아들이는 게 더 자연스러운 거야.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매번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는 부담도 줄어들었어.

그리고 요즘 내가 쓰고 있는 채팅 앱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더 덧붙이자면, 그 중 ‘SM톡’이라는 앱에서 올린 글이 어느 날 갑자기 공감을 많이 받았어. 원래는 그냥 ‘우리 사이의 관계 변화’ 같은 내용을 간단히 적었는데, 누군가는 댓글로 이렇게 썼지: “너희가 만든 게 진짜 리얼한 밀착이더라. 나도 그런 걸 꿈꾸고 있어.” 그 말을 읽고 난 며칠 동안 마음이 조용해졌어. 왜냐하면 그 말이 내게 ‘성공’이 아니라 ‘존재’라는 걸 알려주었거든.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모범’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된 거지.

그리고 지금은, 내가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아. 그저 그와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의미가 된다는 걸 깨달았어. 플레이의 방식도 달라졌고, 감정의 처리도 달라졌고, 오히려 지난 3년간의 모든 실패와 혼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인정하게 됐어. 그래서 가끔은 내가 그와 만나는 게 ‘필수’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건 결코 ‘종속’이 아니라, 오히려 ‘선택’이야. 그 선택을 계속해서 하려면, 내가 스스로를 인정하고, 그의 존재를 그냥 ‘관계’가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

이제는 그와의 만남이 ‘시간’이 아니라, ‘감각’이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야. 내가 언제 어디서든, 그의 존재를 떠올릴 수 있고, 그가 없는 날은 마치 뭔가 빠진 듯한 공허함이 느껴져. 그것이 싫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제는 그 공허함도 ‘나의 한 부분’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어. 그리고 그게 완전히 당연한 일이 되는 순간, 나는 그 관계를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의 형태’로 받아들이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