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잠이 오질 않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났어. 내가 왜 이렇게까지 관계를 고민하는 건지. 이건 단순히 '내가 어떤 성향인지'를 아는 것 이상이었거든. 마치 스스로의 정체성을 털어내는 거 같았어.
그런데 그게 시작된 건 아주 사소한 일이었어.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만난 여자친구와의 첫 번째 만남이었는데, 처음엔 그냥 평범한 커플처럼 보였어. 커피 마시며 대화하고, 웃고, 가볍게 손잡고 산책도 했지.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내가 좀 지배받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순간 멈췄어.
정말 갑작스러웠고, 어색함이 뒤덮었어. 나도 모르게 “아, 그래?”라며 어색하게 웃었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너한테 그런 느낌 주고 싶은 거야”라고 말했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속에 무언가 깨어났어.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서, 혼란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약간의 기대감도 느껴졌어. ‘내가 그렇게 강하게 보였나?’라는 생각과 함께 ‘나, 진짜 이걸 원하는 걸까?’라는 의문도 생겼지.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매일 같은 질문을 반복했어. 내가 정말 이 상황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그녀의 말에 반응하려는 의무감 때문인 걸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와의 관계는 조금씩 달라졌어. 처음엔 내가 다 해주려고 했지. "내가 너를 잘 챙겨줄게"라는 말을 자주 했고, 그녀의 일상에 개입하기 시작했어. 일정을 조정하고, 어떤 옷을 입을지 제안하고, 심지어 그녀의 취미까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보자고 제안했지.
그게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꼈어. 더 이상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지 않았어. 오히려 불안해 보였고, 긴장된 표정이었지.

그걸 알았을 때, 나는 뭔가 잘못된 게 있다는 걸 깨달았어.
내가 원했던 건 ‘그녀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의 중심이 되는 것’이었단 걸.
결국 그녀는 결국 관계를 끊었다고 말했어. 그 이유는 “너는 너무 제어하고 싶어 보였어. 내가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았어.”라는 말이었지.
그 말을 듣고, 나는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진짜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지. 내가 정말 ‘돌봐주는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통제하고 싶은 사람’이었는지.
그때야 비로소, 내가 아마도 돔 성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그것은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 ‘조직화되고 안정된 존재감’을 원하는 성향이었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어.
그 후로 나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스스로를 분석했어.
내가 원하는 건 ‘지배’ 자체가 아니라, ‘관계의 중심에 서서 책임지고 싶다’는 욕구였다는 걸 알았지. 내가 누구를 데리고 가고, 그 사람이 나를 믿고 따라올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그게 내 성향이었고, 그걸 전부 강요하거나 압박하는 게 아니라, 서로 합의를 통해 나누는 것이라는 걸 배웠어.
그런데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지금의 상황이야.
어떻게 된 건지, 몰라도 나한테는 정말 운명처럼 다가온 거야. 최근에 알고 지낸 남자친구와의 대화 중, 그가 “혹시 네가 제어하고 싶은 타입이야?”라고 물었을 때, 나는 당황했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 없이, 내가 이미 2년 넘게 이런 성향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걸, 그는 알아차린 것 같았어.

그때, 나는 자연스럽게 “음… 네, 좀 그런 편이야.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강요하진 않아. 다만 내가 중심이 되는 게 좋아서, 그 중심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어”라고 말했어.
그가 미소를 지으며 “그럼 우리, 좀 다른 방식으로 만나볼까?”라고 말했을 때, 나는 막막함보다는 기대감이 먼저 왔어.
그리고 지금, 우리는 실제로 그런 관계를 시도하고 있어.
전혀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작은 규칙들을 세우고, 각자가 어떤 부분에서 지배를 원하는지, 어떤 부분에서는 자유를 원하는지 대화를 나누고 있어.
예를 들어, 일정을 정할 때 나는 결정권을 갖고 있지만, 그 전에 그가 ‘이거 괜찮아?’라고 묻는 거야. 그리고 그는 내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내가 과도하게 조절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제안해주기도 해.
그런데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건, 요즘 쓰고 있는 채팅 앱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SM톡**이라는 앱이야.
처음엔 오픈채팅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들은 이야기였어.
‘오픈채팅은 너무 흐름이 빨라서, 진짜 맞는 사람 찾기가 어렵더라’라는 말을 듣고, 검색해봤는데, 여기서 사람들이 다소 신뢰감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
특히, 소개글이나 프로필에 ‘성향 공유’를 필수로 하도록 되어 있어서, 나도 처음부터 ‘나는 돔 성향인데, 상대의 합의를 우선시한다’고 적었어.
그 덕분에, 진짜 ‘나랑 맞는 사람’을 찾아내는 데 시간이 덜 들었고, 초기부터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히 공유할 수 있었어.

이제는 그 앱을 통해 만난 사람과 함께, 조금씩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어.
내가 어떤 성향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피하는지 — 그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관계를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이제야 알겠어.
생각해보면, 그녀와의 관계를 끝내고 난 뒤에 겪은 혼란과 실패들이, 결국 내 성향을 이해하게 만든 계기였던 거야.
지금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아.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지나치게 통제하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 반대로 ‘나도 좀 자유롭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도 해.
하지만 이제는 그걸 단순히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
내가 원하는 건 ‘완벽한 돔’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법’이니까.
이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나와 어떤 방식으로 함께할 수 있을지, 조금씩 테스트하고 있잖아.
그게 나의 성향을 알아가는 길이고, 동시에 나를 인정하는 길이기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