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로 원했던 걸, 그 사람과 함께 해본 날

어제는 좀 특별한 날이었어. 그동안 망설였던, 내가 원했던 거 하나를 진짜로 해봤거든. 상대방도 내 기분을 읽어주고,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였던 게 중요했어. 처음엔 그냥 놀이처럼 시작했는데, 점점 무게가 붙어가는 걸 느꼈지. 결국엔 내가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됐고, 그건 분명히 나의 몸과 마음이 다 털어내려 갔다는 신호였어.

플레이 자체는 꽤 오래됐고, 상대는 내가 예전에 알고 있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더 조심스럽게 다가왔어. 아니, ‘조심스럽’보다는 ‘내 속을 정확히 읽는다’는 느낌이 강했어. 가벼운 매질부터 시작해서, 점차 무게감을 늘렸고, 내가 지치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쉬는 시간을 주고, 다시 시작하는 방식이었어. 그런 식으로 3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때 나는 벌써 제대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어. 눈앞이 흐릿하고, 팔다리가 무거워지고, 왜 이렇게 피곤한지 알 수 없었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안은 없었어. 오히려 내가 더 이상 어떻게든 스스로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나 편안했어.

그리고 결국 도착한 건 서브드롭이었어. 문득 바닥에 쓰러진 것 같았고, 머릿속은 공기처럼 텅 비어 있었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고, 눈을 감아도 그림자가 스쳐가고, 귀는 시끄럽게 울렸지만, 그 소리가 내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정도로 멀어져 있었어. 침대 위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숨만 쉬는 상태였어. 그때 상대는 조용히 내 옆에 앉았고, 천천히 내 손을 잡았어. “괜찮아, 여기 있어”라는 말은 별 것 아닌데, 그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몰라.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아프고 허탈했는지가 뒤늦게 밀려왔어.

그 이후로는 정말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케어가 이어졌어. 물 한 모금을 씹어 삼키게 해줬고, 담요를 덮어줘서 체온을 유지시켜줬어. 얼굴을 만지거나 손을 잡는 행동은 거의 없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안정감을 줬어. 말을 걸면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상대는 기다려줬고, 내 반응이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렸어. 그 사이에 내가 조금씩 회복되는 걸 느꼈다. 마치 어릴 적 아픈 몸을 누이고 있으면 엄마가 조용히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그 침묵이 내게는 생명이었어.

처음엔 서브드롭이란 게 어떤 거야,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해? 하는 식으로만 생각했어.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그것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든 걸 내려놓는 과정이라는 걸 알았어. 내가 평소에는 얼마나 자율적이고, 통제하려고 하는지를 알기에, 그게 무너지는 순간이 얼마나 크고, 동시에 얼마나 중요한지도 느껴졌어.

그리고 그날 이후로는 내가 챙기는 것도 생겼어. 물론 상대에게 받았던 케어를 그대로 돌려줄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정리해놨어. 예를 들면, 플레이 후에 잠깐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공간을 만들어두는 거. 따뜻한 차를 준비하거나, 조용한 음악을 틀어주는 것. 그게 다가 아니지만, 그게 내게는 ‘내가 너를 보았다’는 메시지니까.

그런데 최근엔 이걸 실생활로 연결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어. 사실 지금은 새로운 채팅 앱을 써보고 있는데, 그 중에서 'SM톡'이라는 앱이 좀 괜찮더라고. 오픈채팅에서 정보를 얻다가, 거기서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길래 한번 시도해봤어. 의외로 다른 앱들과 다르게, 채팅 방마다 성향이나 플레이 스타일을 명확히 설정해두고 있어서, 내가 원하는 캐릭터와의 대화가 더 자연스럽게 이뤄졌어. 특히 ‘애프터케어’나 ‘드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커뮤니티가 따로 있어서, 그런 경험을 나누는 사람이 많아서 좋았어. 내가 처음으로 ‘내가 드롭된 이후의 감정’을 글로 써봤을 때도, 그곳에서 많은 공감을 받았거든. 그게 또 하나의 치유였어.

이젠 내가 누군가에게 애프터케어를 해주는 입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아마도 내가 이제야 그 관계의 본질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단순히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그 이후에 어떻게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거든. 플레이 끝난 후의 침묵, 조용한 손잡기, 따뜻한 차, 그리고 그저 ‘여기 있어’라는 말 — 그것들이야말로, 진짜로 나를 소유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어.

내가 그저 놀이의 일부였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게 아니라, 관계의 중심에 서고 싶어. 그래서 애프터케어는 나에게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