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니고’라는 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다들 술술 쓰는 거 보고 그냥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페어링이나 루틴 같은 건 들어봤지만, 니고는 처음이었고, 이름도 낯설었다. 그게 다가 와서야 ‘아, 이거 전에 뭐였더라’ 싶은 걸 알았다. 마치 내가 무작정 빌딩 옥상에서 밤을 새우며 뭔가를 하다가, 갑자기 정체불명의 장비 하나를 들고 와서 내린 결정처럼.
그때는 나도 모르게, ‘아, 이런 거 있네’ 하고 넘겼다. 그런데 한 번 해보니까… 그게 진짜로 다른 거였다. 그전까지는 그냥 ‘나는 어떻게든 해낼 수 있겠지’ 싶은 막연함 속에서 했던 플레이들이, 이제는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상대방의 눈빛, 목소리, 숨결조차도 너무나 중요해졌고, 그게 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으로 본인이 직접 니고를 해본 건, 누군가랑 두 번째 만남 이후였다. 그 사람은 조용하고, 약간 헤어스타일이 특이한 사람이었는데, 말은 적지만 눈빛이 강했다. 그날 오후,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아무것도 안 되는 듯한 대화를 했다. “요즘 잘 지내?” “응, 그래.” 그런 것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가 물었다. “혹시… 니고 한번 해볼래?”
나는 당황스러웠다.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제안받는 건 처음이었고, 또 그게 ‘이 사람과’라는 점에서 더 미묘했다. “어, 응…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물으려는 순간, 그는 조용히 노트북을 꺼내더니, 메모장 하나를 열었다.

“이렇게.”
그리고는 글을 써내려갔다.
– 희망: 라이트한 타격, 아프지 않게
– 금지: 얼굴에 도달하거나 입술, 목
– 경계: 쇼크 후 10분 이상 멈추기
– 행동: 첫 5분 동안만 감각 테스트, 이후 반응 확인
– 사후: 기분 설명, 필요하면 휴식 요청
나는 그걸 보면서, 머릿속이 뚫렸다. 이건 단순한 조건이 아니었다. 이건 ‘나의 자리를 책임지는 법’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건, 모두 ‘내가 원하는 대로’였는데, 이게 ‘우리가 함께 정한 대로’라는 점에서, 무언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까, 처음엔 불편했다. ‘이거 괜찮아?’라며 계속 확인해야 했고, 상대의 표정이 조금 바뀌면 바로 멈췄다. 처음엔 조용히 ‘괜찮아’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뭐가 잘못된 거야?’ 싶은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30분쯤 지나니까, 그 조건들이 자연스럽게 내 안에 스며들었다. 마치 내가 그 안에서 마음을 비우는 과정 같았다.

왜냐하면, 그 조건들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신뢰를 짓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픈 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내가 아프면 말하라’고 명확하게 말했기 때문이었고, 나는 그걸 믿을 수 있었다. 그저 ‘내가 견딜 수 있을 거야’라며 막 했던 게 아니라, ‘당신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알려주고 싶어’라는 마음이 묻어있었다.
그날 밤, 플레이 끝난 후에는 잠깐 눈을 감고 있었다. 어쩌면 그게 가장 오랜 시간동안 느낀 ‘완전한 휴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요즘은 좀 더 쉽게 접하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힘든 일이 있거나,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면, 별도의 공간에서 '니고'를 다시 써본다. 단순한 리스트가 아니라, ‘나는 어떤 상태에서 어떤 플레이를 원하고, 어떤 건 피하고, 어떤 걸 필요로 하는가’를 말하는 과정이다. 그게 결국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고.
그리고 최근엔, 그걸 ‘SM톡’이라는 앱에서 공유하는 걸 습관처럼 하고 있다. 오픈채팅보다는 정보량이 많고, 사람들이 꾸준히 자신의 니고를 업데이트해서 보여주는 게 마음에 들어. 내가 처음에 만들었던 그 메모장도, 이제는 그 앱에서 공개된 여러 니고 중 하나로 존재한다. 아무도 몰라야 할 내용이 아니라, 오히려 공유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걸 알게 됐다.
처음엔 ‘니고’가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그게 없으면 플레이가 불안해진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우리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