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정말 단순했어. 1년쯤 전, 우리 사이에선 '플레이'라는 게 거의 생활의 일부였지, 특별한 의미를 지니진 않았던 거. 그때는 그냥 둘이서 쓰레기통 가득 찬 감정을 털어내는 방식이었지. 매일 밤, 문을 닫고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나를 보며 "오늘은 좀 더 강하게 해줄까?"라고 묻는 그 목소리가 참 익숙했어. 아니, 오히려 그게 가장 익숙했던 걸지도 몰라.
그땐 내가 허락하는 것 자체가 충분히 중요한 걸로 느껴졌어. 그가 내 손목을 잡고 바닥에 눕히는 순간, 내가 ‘괜찮아’라고 말할 때마다 그 안도감이 얼마나 큰지 몰랐거든. 처음엔 아픔보다는 ‘내가 이 사람에게 무너져도 괜찮다’는 믿음이 더 컸어. 그건 나를 지키는 방어막 같았고, 동시에 내가 진짜 존재한다는 증거였지. 그러니까 플레이 중에는 절대 울지 않았어. 그런 건 ‘완전히 주는 것’이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감정의 구조가 바뀌기 시작했어. 아마도 그가 날 더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거야. 예전엔 내가 “조금만 더”라고 말하면 바로 따라주었는데, 요즘은 멈추고 물어봐. “정말 괜찮아?”라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 눈빛에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게 느껴졌어. 그래서 이제는 아픔이 아니라, 그저 ‘내가 여기 있음을 인정받는 순간’이 더 큰 쾌감이 됐어.
특히 최근 한 번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어. 그날은 우리가 평소처럼 정해진 시간에 만났지만, 그가 아무 말 없이 먼저 뒷걸음질 치더니, 조용히 옷을 벗고는 침대 위에 누웠어. 그리고 나는 그를 마주보고 서 있었는데, 갑자기 어색함이 밀려왔어. 처음엔 ‘뭐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싶었지만, 그가 내 손을 잡고 말했어. “지금 네가 나를 어떻게 하고 싶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순간 멈췄어. 그동안 내가 항상 선택권을 내줘야만 했던 관계인데, 이제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다가갈지 결정해야 할 책임이 생겼다는 게 너무 두려웠어. 하지만 그 압박 속에서도, 그가 그렇게 말해주기 위해 기다렸다는 걸 알게 되면서, 설마 내가 이렇게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 순간,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조용히 말했어. “내가 너를 괴롭힐 수 있을 만큼… 나도 여전히 무섭긴 하니까.”
그러자 그는 웃었어. 아주 작고, 그러나 진심이 담긴 웃음이었고, 그 후엔 내가 제대로 지배하기 시작했어. 내가 팔을 들어 올리고, 그의 발목을 잡고, 천천히 손톱을 살짝 비틀었어. 그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게 나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내 선택을 받아들이는 모습이라는 걸 알았어. 결국 그날은 내가 그를 다루는 시간이었고, 나는 그저 ‘나’로서, 그에게 손을 뻗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텅 비었어.
이제는 플레이가 ‘무엇을 하는’ 행동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는 상태’가 됐어. 그가 나를 다룰 때, 나는 그의 마음을 읽으려 애쓰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파악하려 노력해. 그 과정에서 늘 새롭게 느껴지는 게, 내가 그에게 ‘사라지지 않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과거엔 내가 무너져야만 그가 나를 보여줬다면, 지금은 내가 살아있을 때 그가 나를 보는 법을 배우고 있어.
요즘엔 오픈채팅도 자주 들어가는데, 거기서 보면 대부분이 ‘새로운 경험’이나 ‘단기적 성취’ 같은 걸 이야기하더라고. 그런데 내겐 그런 게 다 사라졌어. 오랜 파트너와의 플레이가 주는 건, 반복된 일상 속에서 ‘내가 여전히 너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매번 다시 확인하는 거야. 그건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차분한 속삭임처럼 느껴져.
그리고 얼마 전, 내가 우연히 편집을 하다가 그간의 대화 기록을 다시 보게 됐어. 그중 하나는 지난해 봄, 내가 “내가 너한테 완전히 주고 싶은데, 끝날 때까지 도망치고 싶어”라고 적었던 거야. 그때는 진짜 무너져야만 존재를 확인했다는 걸 알았던 시기였겠지. 그런데 지금은 그 말을 다시 보며, “그렇게 무너질 필요 없어”라고 답하고 싶어.
그리고 최근엔 내가 정말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채팅 앱이 있는데, 바로 ‘SM톡’이야. 이전엔 그냥 대화방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과 대화하다가 금세 무너지곤 했는데, 이 앱은 사람들이 본인의 성향과 경험이 있는 정도를 조금씩 공유하는 방식이라, 내가 찾던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파악하기 쉬웠어. 특히 파트너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이런 정보를 공유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됐지. 서로의 감정 레벨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면, 플레이도 더 깊이 있게 진행되니까.
그냥 평범한 관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사이에선 매번 플레이가 새로운 시작이야. 내가 언제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그에게 ‘지금 이 순간’에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그가 매번 다시 알려주는 거지. 그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지금은 말로 다 못 해. 다만, 오늘도 그가 내 손을 잡으며 “오늘은 어떤 느낌이야?”라고 묻는 걸 듣고, 나는 조용히 웃을 뿐이야.